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완주 도예가 진정욱
안녕하세요. 도예가 진정욱 입니다.
저는 아주 우연하게 도예계에 입문한 뒤 다분히 의도적인
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완주군 소양면 위봉마을에 저의 일터 <봉강요>가 있습니다.
원광대학교 공예과 3학년 이던 2000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흙’과 ‘불’을 숙련되게 다루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2살 이던 저는 흰 눈에 덮인 이곳을 보자마자...
두 번도 고민 안했습니다.
22년 동안 <봉강요>에서 수많은 도자기를 빚어 왔고,
앞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하게 될 텐데요...
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지 않는 순수와 자연을 더한
분청사기의 맥을 잇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완주의 도예가로서 ‘완주 분청사기’의
특징인 인화문 기법을 더 연구하고 노력해서
‘완주 분청사기’를 전승, 발전시키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고요.
또 우리 완주 지역의 문화관광산업을 <봉강요>를 통해
도예부분이 이끌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스무 살, 시작은 ‘우연’ 이었지만,
지금 저, 진정욱에게 도예는 ‘의연(宜然)’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연하게 도예계에 입문 한 뒤 다분히 의도적인 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입시미술학원을 다녔는데 대학진학은 진짜 관심 없었어요. 반항, 사춘기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냥 무기력한 학창 생활을 한 거죠..
그래서 대입 원서도 안 썼는데....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들을 포기 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께서 저 모르게 공예과 원서를 접수하셨고.... 합격 한 거죠.
도자기는 공예과에 전공으로 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후부터는 저 스스로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고 작업 합니다.
그 목표는 곧 제가 이루려는 구체적인 꿈이기 때문에 공부와 작업을 의도하게 되는 거죠.
“칭찬을 들으면서 그 몇 분 안 되는 사이에 인생의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학교를 갔죠.
공예과에서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선배 중에 한 분이 도자기를
알려주더라고요... 딱히 하고 싶은 전공도 없고, 마지못해 도자기를
했는데 선배가 칭찬을 해주시는 거예요. 이상했죠.
매일 권태롭고, 무기력한 삶을 사는 와중에 흙을 만지면서
누군가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들은 거니까요.
“내가 20년 인생에서 칭찬을 들어본 적 있나?”
그 칭찬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거죠.
그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선배들이 하는 작업 공간에 기웃거리고...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불량학생이었는데 전공에 대해서 관심 갖고...
도자기를 전공을 해야겠다는 확신까지 생기면서 열혈학생이 됐죠.
“도자기 이외 다른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도자기에 대한 확신 생겨서 대학 1학년부터 지금까지 사명감 같은 의미로 쭉 해오고 있는데.. 제가 그럴 수 있었던 데는
멘토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군대 제대 후 복학했을 때, 멘토 유경상 교수님께서 깊이 있는 활동 을 위해서 더 공부하기를 권하셨죠. 도자기를 평생 할 건데... 시대적 으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공부를 좀 더하라는 권유...가 있으셔서.. 편입을 했죠. 그 때부터 학교 안에 숙식공간을 만들어서 작업하다가 3학년 겨울 때 위봉마을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입주했습니다.
그 때가 IMF시절 이었는데요...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 뜻이 너무 크고 간절하니까 부모님께서 기특하셨는지...토대를 마련해 주셨 죠. 대학 4학년은 위봉마을 <봉강요>에 박혀서 작품만 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대학 1학년부터... 지금까지.. 도자기 이외 다른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라북도에서 나름대로 장작 가마를 때는 확고한 작가로 이미지를 심고 싶었습니다. ”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었죠.
도자기라는 것이 우리 역사 속에 실체했고, 또 전통이라는 것을
무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마에 집착을 했던 것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도자기에 관해서는 전통을 꼭 살리고 싶은데..
사실 전통 장작 가마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대학원 때 이었는데... 전국에 장작 가마가 있는 곳이면 찾아가서...
가마 공부를 했습니다. 현장 공부를 해서 경험하고, 시도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죠.
지금 <봉강요>에는 장작 가마, 전기 가마, 가스 가마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제 나름에는 전라북도에서 장작 가마를 때는 확고한
작가로 이미지를 심고 싶죠. 제가 공부하러 전국 가마를 찾아 다녔듯 이... 전라북도, 봉강요에 가마를 공부하러 올 수 있게....
“지금은 완주 분청사기를 계승하려고 합니다.”
처음 작품은 유약 바르지 않고, 만든 도자기를 가마 안에 넣고, 3,4일 나무를 때면 나무 재가 날려 도자기에 얹어지면서 재가 녹아서 유약 을 대신한 효과를 내는 일본 말로는 비젠 도자기라고 하고 우리말로 는 무유소성작품을 주로 했죠.
30대 중반 부터는 소품 도자기가 아니라 대형 도자기를 만들어 보면 내가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대형 도자기를 쭉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분청사기를 계승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통 분청사기 보다는 실험적 도자기를 했는데 돌이켜 보면
맥락은 다 분청하고 관련이 있었던 거죠.
2016년 완주군에서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굴 됐다는 기사가 났고,
그 파편들을 전주국립박물관에서 기획전시하다는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우리 완주 지역에 분청사기 터가 있었다는 사실에 관심이 갔죠.
더욱이 소양에 가마터가 있는데...위봉에서 내가 그 동안 해오던
도자기도 분청사기라는 점에서 더 확실하게 계승하고 전통을 이끌어 야겠다는 소명감이 들었습니다. 그 때 발굴된 자기 파편들이 주로 인 화문 기법이었습니다.
그때 2016년부터 ‘인화문기법’에 공부하고, 올인 하게 됐죠.
또, 과거 왕실용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한 말 그대로 정부에서
직영관리하던 가마를 ‘관요’라고 했는데요...이 관요에서 생산되는
자기의 가운데에 관사 명을 찍습니다. 2018년 부터는 도자기에
새기던 관사명을 응용하는 작업에도 하고 있습니다.
민화에서 많이 그렸던 문자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응용하는
작업인데요.. 이 작업을 통해 역사적으로 고증된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어간다는 보람이 있습니다.
“인화문기법”
도자기에는 푸른 빛깔을 띠는 청자가 있고요... 이 청자는 흙과 잿물 에 포함된 철염의 성분이 푸른빛을 띠게 하죠. 이 청자는 무늬가 독 창적이고 섬세하고 미묘한데요.. 고려시대 청자에 있던 학은 상감기법 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분청사기는 조선초기 도자긴데요.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준말 입니다. 회색이나 회흑색에 하얀색 백토를 채워 넣은 방법으로 여자 가 화장을 하듯이 청자 흙에서 하얀색으로 분칠한다고 이해하면 되고요.
분청사기에도 여러 기법이 있는데... 저는 완주 분청사기의 특징인
인화문 기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화문 기법은 점이나, 여러모양의 도장을 이용해서 점토에 문양을 찍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입니다.
“봉강요”
‘봉강’은 삼씨세끼 고창편 촬영지명입니다.
그 곳 고창 ‘상하’라는 곳에 진씨 종친들이 해마다 수련하던 집
이름이 ‘봉강’입니다.
처음에 ‘봉강도예’라 이름 했는데.... 가마가 있는 자리라 해서
‘가마요(窯)’를 써서 ‘봉강요’로 바꾸게 됐죠.
저는 <봉강요> 공간이 나만의 작업공간이 아니라...
완주 군민이나...완주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도예공원으로 함께
향유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도자기를 하지만 맹목적인 도자기를 만드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산업화하는 미술이 한 축을 이끌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도자기가 꼭 작품 개념보다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이용해 문화 상품, 관광 상품 개발 등을 해볼 수도 있겠고요. 그런 경험이나 활동을 통해서
나름대로는 전북이 또 완주가 공예 산업화와 전통공예가 문화와
잘 섞이게 되는 계기가 되도록 일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완주의 분청사기를 이어나가야 할 친구가 없어서 단절 되면 어쩌지?”
제가 대학에서 지도도 하고 했지만 요즘 학생들은 도제식으로
배움보다는 창업이라는 길이 열려있어서... 상가에서 창업을 하지..
선생님에게서 과정이나 배움으로 가지 않는 추세라 서요.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치를 전수하고 같이 갈 수 있는 후배나 제 자가 뒤를 받쳐주고 그러면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수할 친구들과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죠.
전승하는 제자나 친구가 있어야... 내가 앞에서 끌어지고 하면서
나아가는 것인데...
최근에는 완주의 분청사기를 이어나가야 할 친구가 없어서 단절 되면
어쩌지? 싶은 걱정이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어려운 점이죠.
“가능성입니다.”
도자기를 통해서 제 능력치가 발휘 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고..
내 도자기를 알릴 기회가 꾸준히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분발하게
됩니다.
제가 지금 마흔 여섯인데요. 지금 저의 상황보다 앞으로가 더 가능성 있고, 희망도 있다고 저는 믿거든요.
제 일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좋아질 거라는 긍정적 마음이 가득한 가 능성 아닐까요?
“시작은 어머니, 지금은 와이프!”
도자기는 제 일이고, 제 꿈이기 때문에 제가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의욕 없던 저를 도자기와 만나게 한건 어머니셨죠.
나쁜 길로 갈 수 있었던 아들인데...
끝까지 끈을 놓지 않은 어머니 사랑 덕분에... 시작이 됐고요.
작업만 할 수 있게 응원해주는 아내 덕분에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와 와이프 덕분에 제가 무한한 힘을 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죠.
“지금은 인위적이지만 인위적이고 싶지 않다.”
저의 <봉강요>가 지역의 문화 관광산업을 도예로 이끌기 위해
미술관이나 야외 조각 공원 같은 공유 공간으로 거듭 나기위한
노력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완주 예술가와 일반인들이 가까워
질수 있는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겠고요.
제가 겉으로는 목표를 향해 계획을 가지고 살지만,
마음속에서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을 닮은 자유분방하게 정점에
도달하면 인위적인 것을 내려놓고... 자유스러움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싶은 최종의 목표가 있습니다.
즉, 진정욱은 인위적인 사람이 아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