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제주를 품다
선진지 견학지로 제주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동안 제주를 관광지로서만 인식했던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세화리를 비롯하여 성산일출봉 근처의 사업체들을 견학한 결과, 우리의 선입견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잊힌 동네였던 곳이 어떻게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는지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박 3일의 시간이었지만 제주의 저력과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시점에서 완주의 실체와 현주소를 냉정하게 돌이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들의 성공사례를 어떻게 완주에 접목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요 방문지로는
- 제주도 DMO의 거버넌스 선진사례 기업인 복합문화농장 ‘무릉외갓집’
- 환경 보호와 지역사회 발전을 조화롭게 이룬 관광지 ‘환상섬’, ‘질그랭이 협동조합’
- 제주도에서 세계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마을여행투어 ‘카카오패밀리’, ‘세화마을 세계여행’
- 제주도의 전통 해녀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 ‘해녀의부엌’
- 제주도 친환경 농부들이 직접 운영하는 팜카페 ‘소농로드’등 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외갓집의 푸근한 정에 끌리다
무릉외갓집은 매달 재주의 제철 농산물로 꾸러미를 만들어 가입한 회원들에게 배송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 폐교되었던 무릉동국민학교에 무릉 2길 55개의 농가와 벤타코리아가 힘을 모아 세운 곳이지요. 무릉외갓집에서 제공하는 꾸러미 상품은 제주도의 특산물과 농산물을 포함한 패키지 상품이 주력입니다. 주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구독하여 집에서 편리하게 받아보는 시스템입니다.
평생 농사만 알던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판매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고, 대신 신선하고 양질의 상품을 받기로 했습니다. 매달 다른 품목으로 제철 과일과 채소를 받을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은 이들을 인터뷰한 잡지를 같이 넣어서 발송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도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가족수가 적은 이들을 대상으로 소량 패키지도 제품화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농산물은 대접받기 힘이 듭니다. 생산자가 애써 좋은 상품을 개발해도 몇 단계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피해를 입는 구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구독 시스템을 도입하여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고, 소비자들의 만족을 높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구독서비스를 도입한 후, 기다려진다는 고객의 답변을 받았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무국장의 말처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보람은 소비자의 만족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전국에서 로컬푸드의 성지로 알려진 완주군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구독한 제품이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소비자가 있는 한, 그 제품은 외면받지 않을 겁니다. 농산물 비중이 높은 완주로서는 현 시스템에 대한 점검과 함께 다른 형태의 시스템 도입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해녀 이야기도 돈이 된다
제주도 <해녀의부엌> 종달점은 제주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하고 요리하는 문화를 체험하는 신개념의 레스토랑이자 문화공간입니다. 전통 해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요리를 개발하는 셰프, 해녀 문화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아티스트, 그리고 해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구성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춘옥 해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전공한 청년들이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해녀의부엌>에서 거칠고 힘들었던 해녀의 삶과 제주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제주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습니다. 신선한 해산물의 풍미는 덤으로 얻습니다.
우리 고장 완주는 어떨까요? 완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농사 이야기에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일까요? 아니면 외면할까요?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관심을 갖고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추억도 돈이 되는 시대이니까요. 사람들은 스토리에 열광하고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완주가 가진 독창적인 이야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를 발굴하고 사업화한다면 또 다른 시장이 열릴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에게 바다가 뭐냐고? 뭐긴 우리부엌이지!”
세화가 변하면 제주가 변한다
제주도 세화마을 협동조합은 세화마을 494명의 주민이 함께 운영해 가는 협동조합입니다. 이 협동조합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의 발전과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도 정겹고 친근한 질그랭이입니다.
최근 세화마을 협동조합에서는 관계인구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위하여 워케이션을 추진 중입니다. 단순 여행자가 아닌 주민으로서 세화마을에서 한주 살면서 일손 돕기, 마을 투어, 다랑쉬 둘레길 투어, 해녀투어, 세화 야밤 투어, 밭담 투어, 오름 투어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구좌읍 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된 ‘마을 주민 주도형 마켓’ 모모장을 열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세화마을 협동조합은 개인이 아닌 마을 단위의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확산시키는 게 주목적입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쉼터에서 정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 중심에 워케이션을 하는 공간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완주 역시 마을 형태의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으나 성과가 미비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전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인구가 줄어든다면 현 상태만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우리는 세화마을 협동조합에서 새로운 인구 유입을 늘리고, 그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 사업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카카오가 불러일으킨 작은 혁명
카카오 패밀리는 카카오를 제품으로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카카오 패밀리의 김정아 대표는 카카오를 떠올리면 카카오톡 계열사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카카오를 먼저 상품화시켰음에도 대기업에 의해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이는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도약단계에 있는 완주 기업들에게도 의미 있는 선례라고 생각합니다.
시댁이 있는 과테말라와의 인연으로 카카오 사업에 뛰어든 김 대표는 초창기의 구멍가게에서 벗어나 지금은 전국에서 카카오 캐러멜을 가장 많이 파는 사람입니다. 제주라는 한계를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뛴 결과인 셈입니다. 제주 1위에 만족하지 않고, 전국이라는 시장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니 길이 열렸습니다.
지금은 가게가 있는 세화리 사람들과 함께 테마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카카오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국의 문화, 음식, 명소 등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카카오 패밀리 세계마을투어는 카카오의 캐릭터 팬뿐만 아니라, 여행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콘텐츠입니다.
카카오라는 제품의 한계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세계마을투어라는 상품으로 극복한 사례는 완주에도 충분히 도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도 완주에서 개별 상품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이를 다른 제품이나 지역 특색으로 묶는 작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부 지원사업 제도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를 완주 DMO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면 토속적이면서도 이색적인 상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제로에서 신뢰라는 꿈을 수확하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소농로드>였습니다. 소농로드는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재배·판매하는 법인입니다. 도시에서 귀농한 세 명의 청년이 주축이 되어 농산물과 카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트밀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도 구축하여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사업체입니다.
처음 이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실패담은 귀농·귀촌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마을 주민의 협조를 얻어 지금은 평대리를 대표하는 사업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해 주민들의 '놀이터'로 운영하고 있으며 '칸트의 식탁' 등 인문학 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때 감자농사를 짓다가 힘들어서 도망갔다는 대목에 우리는 빵 터졌습니다. 농사의 힘듦과 이를 견디는 일이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이후 건강한 먹거리와 6차 산업으로까지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추억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뜻이 있더라도 현지 주민의 협조와 도움이 없이는 뿌리내리기 힘든 게 귀농 귀촌입니다. 이들의 후일담을 들으면서 완주도 귀농 귀촌에 관심이 많은 고장이지만 좀 더 섬세하게 애정을 가지고 대해준다면 새로운 식구가 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또한, 농산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공식품으로까지 판로 영역을 개척한 그들처럼 완주 역시 1차 산업 이상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현대는 퍼스널 브랜딩 시대입니다. 완주에서 나온 먹거리가 전라북도, 아니 전국으로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 개발, 홍보 마케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주는 체계적인 정책 지원과 협력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선진지 견학을 마치며
그동안 제주도는 관광지의 개념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 관광기업 & 로컬현장 실무자 현장가이드 및 사례공유를 듣고 다시 보니 제주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천혜의 자원과 자연이 주신 선물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노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완주가 추구해야 할 미래가 아닌가 합니다.
현장에는 해답이 있다.
혼자는 힘들지만 여럿이면 멀리 오래갈 수 있다.
지금 현재에 머무르려 하지 말고 새로운 도전을 즐겨라.
그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입니다. 이번에 만났던 사업체 대표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사업이나 공동체를 운영해 왔지만 이 세 가지 진리를 강하게 역설했습니다. 또한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모습은 한때 로컬푸드의 성지로 불렸던 완주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이번 견학이 앞으로 완주군의 관광 경쟁력 강화 및 지속 가능한 관광에 좋은 자양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글 장창영
사진 소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