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마음의 결을 닮은 글씨를 찾아서 -서예가, 캘리그라피작가 김채리
서예는 점과 획으로 구성된 문자의 형태와 그 의미를 붓과 먹으로써 전하는 예술이다.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로 삶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조형예술로 발전한 한글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서예가 김채리씨는 더욱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30대 초반, 여느 청년들과 다를 바 없는 나이지만 그의 삶은 남다르다.
붓과 먹, 화선지라는 전통의 도구를 통해 오늘의 감정과 사유를 기록하는 서예가, 김채리 작가.
그가 말하는 ‘글씨를 쓴다는 것’, 그리고 젊은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기쁨, 치열한 하루에 대해 들어보았다.
예술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소소한 경험,
기억의 조각들이 연결되어 언젠가는 꼭 발현되더라고요. 작가님에게는 어떤 경험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 반 친구들이 자기 노트를 가져와서 ‘ㄱ,ㄴ,ㄷ,ㄹ’ 한글 자음을 써달라는 거에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제 글씨가 예뻐서 따라서 쓰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새학기가 되면 새로 나온 교과서를 저에게 들고 와서 이름 써 달라는 친구도 많았죠.
저는 늘 네임펜으로 친구들 이름 써주는 아이였어요. 학창 시절에는 맨날 서기였어요.
회의록 작성하는 서기. 지금 생각해보니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도 꿈을 물어보면 늘 ‘미술 선생님’이였거든요.
대학 졸업 후 다른 일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취미로 서실을 다니게 됐어요.
엄마가 저를 제일 먼저 알아본 거 같아요. 예전부터 그림, 글씨 쓰는 걸 좋아하니까 서실을 다녀보자고 이끈 거죠.
그때 나이가 25살 무렵이었어요. 얼마나 재미있었냐면 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저녁마다 붓글씨를 쓰는 거죠.
일하느라 힘든 시기에도 좋은 글귀를 집중해서 쓰면 고요해지고 위로가 돼요. 새벽까지 매일 썼어요.
서예가가 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느 날은 글씨만 평생 쓰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드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취미로만 글씨를 쓰다가 공모전에도 내고 상을 타던 시기였어요.
2018년 무렵 전주문화재단에서 신진 청년작가 공모전을 보고 호기심에 신청을 했는데 덜컥 제가 뽑힌 거에요.
그룹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인전이었어요.
20점가량의 작품을 혼자 전시해야 하는 넓은 규모의 전시장이었어요.
아직 개인전 할 정도는 아닌데 스스로 고민이 많았죠.
매일 매일 글씨를 쓰던 그 꾸준함으로 작업을 했죠. 전시할 때 호(號)가 있어야 해서 아빠에게 지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은혜를 더한다는 뜻의 ‘가은加恩’이라는 호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이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성경 말씀 전시를 했어요. 사랑에 대한 말씀.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전시를 보고 가셨죠.
‘작품을 보면서 위로가 되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았죠.
내 방에 앉아 새벽까지 쓰던 글씨가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이건 너무 좋은 영향력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업하는 과정이 궁금해요.
글귀를 정하고 구도를 잡아 쓰는 데까지 몇 달이 걸려요. 오랜 시간을 쌓아야 해요.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글씨 하나를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글씨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화난 마음으로는 글씨를 쓸 수 없어요. 글씨는 정직해요.
만약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잖아요, 그럼 작품이 안 돼요.
그래서 먹을 가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오랫동안 벼루에 먹을 갈면서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정화하는 거죠.
그렇게 한번 붓을 들면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화장실도 참아야 해요.
두세 시간은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써내려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서예는 자세도 굉장히 중요해요.
모든 서예는 원필이에요. 팔과 손의 힘으로 조절해서 한 번의 붓놀림으로 농담(색의 옅고 진하기)을 표현하는 거죠.
붓놀림은 계속 연습하면서 몸으로 습득하는 수 밖에 없어요.
저는 묵향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붓을 코끝에 대고 한참 동안 묵향을 맡다가 연습을 시작하죠.
온종일 묵향을 맡고 있을 때 내가 뼛속까지 서예가가 되어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웃음)
작가로서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어요.
김채리스럽다는 글씨체를 찾아가야죠. 저는 밝고 따뜻함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문인화를 그릴 때도 좀 더 따뜻한 색감을 찾게 되고 날카로운 선 보다는 둥글둥글한 스타일의 글씨를 쓰게 돼요.
어떻게 나누며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힘들 때 좋은 문장을 써내려 가며 받은 위로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연말에 개인전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이 재워놓고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12월 13일~18일까지 ‘결’이라는 타이틀로 전시회를 엽니다.
제 마음의 결과 같은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고요,
사람들에게도 그 결이 느껴져서 위로와 치유가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 본 사업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 기록화'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역 소식지 "2025 8월 완두콩 156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