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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실험하고 도전하는 상상력 - 회화 작가 하태훈
하태훈 씨는 회화 작가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화로 회화 작업에 몰입한 건 대략 4년 전부터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혼자만의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는데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미대 진학을 준비하던 누나의 교재가 그의 장난감이었다. 흘러가듯 예고와 미대에 진학해 회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영화 속 특수효과(FX)를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에 뛰어든다. 원체 영화를 좋아했고 호기심도 왕성했다.
“불 나오고 물 뿌리고 영화 안에서 ‘연기 좀 추가해주세요’하면 만들어 주는 그런 작업이었어요.
고됐지만 일 자체는 무척 재밌었어요. 근데 이게 의뢰받은 일이지 제 창작은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3D 프린팅을 활용한 슬립 캐스팅 도자기가 마음에 꽂혔다.
슬립 캐스팅은 물레나 핸드빌딩이 아닌 석고 틀(몰드)에 액체 점토(슬립)를 부어 기물을 만드는 기법이다.
3D 프린팅 도자기 이후로도 전시시설 운영관리, 문화 기획 등 그의 탐색과 도전은 계속됐다. 하지만 늘 허기가 뒤따랐다.
“새로운 일이 주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한계를 느꼈어요.
더 집중하고 노력하면 분명 그 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거기에 갇힌 느낌이 들더라고요.
확장성의 한계라고 할까.” 그런 면에서 순수 회화는 그 어떤 미술 장르보다 표현의 범위가 넓고 확장성이 컸다.
결국 회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유화를 작업 재료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
발색이 뛰어나고 원하는 표현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재료가 유화라고 생각해요.
컴퓨터 그래픽이나 3D 프린팅 같은 작업은 우연적 효과가 거의 없어요.
계획한 대로 나오죠. 유화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올 때가 많은데 저는 이게 되게 재밌어요.
경험한 일들이 창작에 도움이 되나
컴퓨터 그래픽이나 3D 프린팅은 입체 작업이잖아요. 공간과 조형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어요.
모두 회화 작업에 접목할 수 있습니다. 표현능력 도구를 몇 개 더 가지게 된 셈이죠.
어떻게 작업하나
1년 단위로 도전 주제를 정해 작업하고 있어요. 1년 차 주제는‘나는 어떤 사람인가’였어요.
내 안에 있는 그 생각을 끄집어내는 작업이었죠. 자화상도 있고 가족에 관한 것도 있어요.
당시 치아 교정을 하고 있을 때여서 교정기 그림이 많아요.
2년 차에는 제 주변의 환경이나 요소를 깊이 바라보고 싶었는데 아이템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겨우 찾아낸 게 옛날 영화였습니다. 스쳐 가는 영화 속 장면을 포착해 아이디어를 얻곤 했어요.
지금은 3년 차입니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사람들이 왜 무속신앙에 빠져드는지 궁금했어요.
삼두매라고 머리 셋에 다리 하나 달린 상상의 동물을 소재로 풀어가고 있는데 아직 작업이 많지 않아요.
주제에 따라 스타일도 영향 받나
그럼요. 첫 번째 주제를 작업할 때는 캔버스 천에 그림을 그린 다음 꾸기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 우연히 찍히는 효과들이 나와요. 물감이 엉키면서 데칼코마니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데 자연스럽진 않아요.
이 우연한 효과를 통해 작업을 전개해 나갔죠.
두 번째 주제는 조금 더 클래식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특징을 찾아내 회화 본연의 방식으로 그렸어요.
세 번째 주제는 이제 시작 단계다 보니 연구 중입니다.
공간을 크게 바라봤다가 협소하게 바라보면서 그 공간만을 다시 그리고
다시 전체적으로 새롭게 바라보면서 공간 안에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직 정리가 안됐어요.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작업할 때는 관람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관람객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거나 이런 의미로 내 작품을 감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기에 매몰되는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 제 작품은 의도를 벗어나는 일이 빈번할뿐더러 되레 그런 자연스러운 방식의 작업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맞거든요.
작품을 잘 감상하려면
먼저 그냥 보는 거예요. 와서 그냥 한 번 쭉 지나가면서 보는 거죠. 그러면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지겠죠.
그다음에 팸플릿을 보거나 작가의 설명을 들으며 한 번 더 보는 겁니다.
처음 그냥 보고 느낀 생각이랑 두 번째는 분명 다르겠죠.
그래야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고 관람객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작품 중 하나를 고른다면
「자화상」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제 작품은 대개 캔버스 틀을 해체해 천 상태로 돌돌 말아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캔버스 틀 상태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요.
열 개를 그리면 그중 하나 마음에 들기 어려운 데 이 작품은 좋더라고요.
저 자신을 솔직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틀어진 손가락으로 소주를 한 잔 먹으려고 하는데 술이 꺾이면서 그걸 먹지 못하고 있어요.
피부질환이 있어 긁은 자국도 보이고 치아 교정기를 하고 있어 답답한데
옆에는 키우는 고양이가 붙어서 계속 야옹야옹하는 그런 정신없는 상황의 그림입니다.
오래 걸린 작업도 아닌데 보고 있으면 좋아요.
전시회 제목이 흥미롭던데
개인전을 두 번 열었어요. 첫 전시가 ‘기준점’입니다.
저의 첫해 도전 주제가 저에 대한 탐구였잖아요.
내가 바라보는 나와 세상이니 내가 기준점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걸 전시 제목으로 삼은 거죠.
두 번째 전시 제목은 ‘기필코, 거대한 고유’인데 이건 동료이기도 한 아내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주변 환경이나 요소를 테마로 했던 두 번째 과제의 작품 전시였는데 아내가 이 제목을 제안하더라고요.
고유라는 단어가 그 사물에만 특별히 있는 어떤 것이잖아요.
아내가 제 작품에서 그와 같은 걸 봤다면 기분 좋은 일이죠.
예술가가 가져야 할 덕목
예술가에게 자기복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봐요.
계속해서 강화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같은 작업을 오래하다 보면 관성화돼서 못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결과물이 좋을수록 다른 도전을 두려워하게 되는 거죠. 리스크가 크니까요.
저는 조금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덕목 중 하나는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루고 싶은 목표
어렸을 때 물어봤다면 성공해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거였겠죠.
지금은 죽을 때까지 그림 그리며 사는 게 목표예요. 쉬운 일은 아니죠.
* 본 사업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 기록화'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역 소식지 "2025 7월 완두콩 155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