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한 감성 선물하는 캘리그라피 작가 - 신선하
나를 격려하는 글씨
미술을 좋아했지만 소질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공도 공학이다.
취미가 될 수도 있었지만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해 세 자녀의 엄마가 되는 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두어야 했다.
취미생활을 즐기는 또래 여성들을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육아에서 해방되면 나도 반드시 취미생활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어요.
셋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문화 센터로 달려갔죠. 수채화를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모집 마감된 거예요. 마감 안 된 게 뭐가 있나 살펴봤죠.”
딱 한 자리 남아 있던 게 캘리그라피였다.
신선하 작가는 그렇게 우연과 필연의 사이에서 캘리그라피를 만났다.
“처음에는 선생님 글씨를 따라 쓰는데 소질이 별로 없더라고요. 재미를 못 느껴 몇 개월 배우다 말았어요.
남은 재료가 아깝더라고요. 다른 곳에 다시 등록했죠.
어르신이 많은 곳이었는데 젊은 사람이 옆에서 하고 있으니까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재밌더라고요. 용기도 생기고요.”
즐거우니 온라인 등을 보면서 혼자서 막 써보고 그걸 어르신들에게 가져가면 또 칭찬 받고 하는 동안 자신감이 올라갔다.
배우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찾아서 수강했다.
그런 삶이 지속되던 어느날,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니 방금 애들을 재운 것 같은데
벌써 새벽이었고 자신은 그때까지 앉아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때 ‘나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왜 어렸을 때 어른들이 두근두근하는 일을 찾으라고 하잖아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심장이 뛰더라고요.”
그녀는 그렇게 캘리그라피 작가가 되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캘리그라피 공방을 운영하면서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꾸준히 전시도 하고 있고 요새는 글씨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자 대학원에서 서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캘리와 서예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서예가분이 방송에 나와 ‘캘리그라피는 꽃이고 서예는 산이다.
그래서 꽃 구경하러 왔다가 등산을 하게 된다’는 말씀을 했는데 꼭 제 얘기더라고요.
사전상 캘리그라피도 ‘서예’로 정의됩니다.
전통적인 서예가 문방사우라는 정해진 도구를 가지고 정해놓은 법칙에 따라 쓰는 정적인 예술이라면
캘리그라피는 다양한 도구,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다양한 표현을 하는 동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통 서예와 구분 지어 현대 서예라고도 합니다.
간판, 로고, 드라마 타이틀, 각종 생활 소품 등 실생활에 다양하게 적용되어 실용성, 대중성을 갖고 있죠.
또한 글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운 문자가 주는 감동, 두 가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서예를 공부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글씨를 쓰다 보니 전통적으로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건지를 자꾸 파고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또 붓과 먹, 화선지 같은 전통 재료가 주는 아름다움, 안전감 같은 걸 더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잘 알기 위해서 깊이 배워보자는 마음이었죠.
Q.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었나요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요? 글쎄요. 그림을 좋아하긴 했는데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잘 하지는 못했어요.
미술 숙제를 못 해서 언니 오빠한테 도움 받곤 했죠. 언니한테는 글 써달라 하고 오빠한테는 그림 그려달라 하고.
근데 저에게 어떤 예술적 감수성이 있다고 한다면 고향 덕분일 거예요.
되게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하루에 버스 한 3대 다니는 깡시골이요.
늘 하늘을 보면서 자랐고 자연 속에서 놀았기 때문에 그런 감수성이 좀 남아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랐던 선생님들이 되게 부러워하시더라고요.
Q.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죠.
일단 주제를 정한 다음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자료를 찾죠. 스케치도 하고요.
그런데 막상 처음에 정한 주제가 잘 안될 때가 있어요. 머릿속의 생각을 손이 못 따라가는 경우도 있고요.
<나비> 전시를 진행했는데 처음 주제는 그게 아닌 ‘컬러풀’이었어요.
까맣게만 보이는 먹 안에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잘 안 풀렸어요. 막막하고 힘들어할 때였는데 윤도현의 <나는 나비>라는 노래를 듣게 된 거예요.
그 가사에 꽂혔죠. 마치 캘리그라퍼로서의 제 삶을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주제는 변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스케치하고 준비가 끝나면 본 작업을 합니다.
Q. 작품에 담고자 하는 게 뭔가요.
일상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감정들이에요.
그 감정들을 글씨와 함께 풀어내어 보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싶어요.
한때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었어요. 책을 읽고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죠.
그래서인지 나 자신을 다독이고 위로하는 것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자신조차 격려 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작품은 다른 이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낀 감정이 오롯이 다른 이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Q.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어떤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굉장히 정제해서 담잖아요.
그렇기에 그 안에 표현된 글이나 그림들은 무척 아름답거든요. 그림책을 읽어줄 때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어떤 사진이나 음악을 통해서 또는 주변의 풍경들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Q. 본인만의 작품세계가 있다면.
나만의 글씨, 나만의 느낌을 담고 싶어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굳이 꼽자면 세 아이 엄마로서의 경험과 감정이 작품에 깊이 배어 있는 게 차별화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강렬한 메시지보다 보는 이들에게 위로와 안정을 주는 따뜻함을 글씨에 담고 싶어요.
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통 서예의 기법과 깊이가 현대적 감각과 어우러져 전통적인 붓글씨의 안정감과
현대 캘리그라피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네요.
Q. 선생님의 작품을 잘 감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씨가 가지고 있는 흐름과 리듬, 그리고 먹의 작은 번짐 속에도 의미를 담고자 했어요.
그런 의도들을 잘 파악해 보려면 천천히 오래, 지긋이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말이죠.
Q. 특별히 애착 가는 작품이 있다면.
<나비> 연작입니다.
제 속의 이야기를 윤도현 씨의 노랫말에 기대 표현하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이 있거든요.
추운 겨울을 이긴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잖아요.
저도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상처받는 과정들을 통해서 성장해 왔고 지금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나비가 돼서 자유롭게 날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을 담았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Q.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요.
나는 일상의 소중함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글씨로 풀어내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세 아이를 키우며 겪는 다양한 순간들을 통해, 나 자신을 격려하고,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통 서예의 기법과 현대적인 감각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글씨가 단순한 형식을 넘어 깊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내 작품을 보는 동안만은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각자의 삶 속에서 잠시 멈추어 줄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글에서 한 번, 글씨에서 한 번, 그림에서 또 한 번
이렇게 세 번의 감동을 주는 시서화의 조화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하지도 않고 있으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소문내고 있는 게 있어요.
바로 캘리그라피 에세이집을 펴내는 일입니다.
직접 쓴 글과 글씨와 그림으로 된 저만의 책을 내는 소망이 있거든요.
앞서도 글과 글씨, 그림으로 세 번의 감동을 주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를 위해 간간이 글을 써놓고 있습니다.
Q. 끝으로 한 말씀
캘리그라피 작가로 하나하나 펼쳐지는 세상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이 일은 또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무척 기대되고요.
내가 무언가를 던지면 화답하듯 돌아오는 세상의 대답을 하나하나 엮으며 만들어 가는 지금의 이 삶이 참으로 즐겁고 감사한 나날입니다.
* 본 사업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 기록화'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역 소식지 "2025 2월 완두콩 150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