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유화에서 출발해 도자기의 세계로 나아 간 현실 참여 예술인 - 김 맹 호
법학 전공자로서 논리가 강하고 권위적 성향을 지녔던 그의 부친은
일찌감치 셋째 아들인 그를 육사에 진학 시키고 싶어하셨기에 ‘맹호부대’를 본 따 아들의 이름을 ‘맹호’라 지으셨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감히 카리스마 강한 부친의 뜻과 다른 진로를 꿈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교 입학 당시까지는 언제나 육사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희망을 의식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육사에 진학하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우연히 친구가 다니는 화실에 합류하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고2 때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감행했지요.
제가 고교 졸업할 대 전북대학교 사범대학에 미술교육과가 처음 생겼어요.”
김맹호 작가는 교사와 화가를 꿈꾸며 전북사대 미술교육과 1회 입학생이 되었다.
그의 대학 시절, 그리고 사명감과 열정 넘치는 첫 교직 생활로 이어지는 80년대는
민주화를 향한 사회적 열망이 분출하고 미술계에서는 민중 미술이 태동 하던 시기였다.
“민중 미술을 접하면서 그동안 추구했던 미술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내적 자각이 일어났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내 생각이 너무나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구나,
내면의 본질적 아름다움이 아닌 피상적인 아름다움 만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민중의 아픔이나 시대성을 결여 한 채, 대상의 겉모습이나 색상만 아름답게 묘사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이러한 자각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는 전북 지역 현실 참여 미술동인 ‘들, 바람, 사람들’에 참여했고,
꼬박 3년 학사 장교로 복무를 마치고 학교 현장으로 복직한 후에는 전북민족미술인협회(전북민미협) 창립 멤버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끊임없이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정립해 나간 역사관, 세계관 및 예술관은 꾸준히 확장 심화 된다.
서양화 전공자로서 유화로 출발한 그의 예술 세계는 지금 도자 예술에 닿아있다.
37년간 중등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작업을 지속해 온 김맹호 작가는
2023년 2월 명퇴 후 도자기를 직접 빚어 야생초들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며 작가로서의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직접 빚어 구운 도자기라는 이 새로운 캔버스에 그동안 추구해온 예술 세계를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그의 현재 숙제다.
Q. 화가로서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어릴 때부터 그리는 게 좋았어요. 교사와 화가의 길을 걷고자 미술 교육과에 진학했죠.
86년 대학 졸업 후 민중 미술을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고
당시 전북 지역 현실 참여 미술동인 ‘들, 바람, 사람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학사 장교로 군 복무 후 전북민족미술인협회(전북민미협) 창립에 참여하고 작품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처음 관심 가졌던 주제는 동학농민운동이었어요. 실패했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자주적인 민중 운동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는 낯선 주제였죠. 동학의 시대정신과 민중의 역동성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소나무나 산, 강처럼 영속적인 느낌을 주는 소재를 즐겨 그렸는데 아마도 그 속에서 민중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것 같아요.
2012년에 만경강을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 ‘만경에 물들다’를 열었습니다. 출퇴근 길에 마주하는 만경강에 사로잡혔지요.
강은 서정적인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사실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 즉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한동안 만경강을 주제로 그려 나갔습니다.
Q. 유화에서 도자기로 넘어왔습니다.
2001년 장수에 있던 도예가에게 물레를 처음 배웠습니다.
2002년 소양에 작업실을 겸한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는데, 시골에 터를 잡으니 자연스레 정원과 텃밭을 가꾸고 일구며
흙을 만지고 땀 흘리는 노동에 익숙해지면서 도예의 세계에 마음이 가더군요.
틈틈이 공부를 지속했습니다. 서양화 전공자로서 유화 물감을 쓸 때마다 물감 성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유화 물감 냄새가 좋았는데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흙냄새에 익숙해져선지 어느 순간부터 유화 물감을 다룰 때 머리가 어지럽더군요.
2014년 중국 여행을 계기로 도자기에 그려진 섬세한 표현들에 매료된 후,
작업의 방향이 직접 성형한 도자기 위에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대략 3년 정도 열심히 준비해서 2017년 도자기 작품들로는 첫 개인전 ‘백자 야생초 그림전’을 열었습니다.
시골 생활 속에서 항상 흙, 벌레와 곤충들, 풀과 꽃들, 그리고 나무들을 다루며 사는 제 입장에서는,
생태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예술 방식 중 하나가 도자예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거지요.
도자기 빚는 작업을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내 모습을 보며
저와 잘 어울리는 매체라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자기의 하나로 칭송되는 달 항아리의 제작을 집중 공부했습니다.
전문적인 교육 과정이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주변 지인 도예가들과 유튜버들의 도움을 받아 독학하는 힘든 과정이 이어졌지요.
최근에는 달 항아리 기법을 응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빚은 후 청화, 철화, 그리고 고화도 채색 안료 등으로
풀과 벌레 등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최근 작업 중인 달 항아리 기법을 응용한 작품>
Q.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자연과 생명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공감과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지요.
저는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0여 년 넘게 시골 생활을 하며 그동안 제가 관찰한 땅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바로 해마다 땅속 깊이 뿌리 내려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떨어져
다시 살아나 주변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내는 잡초들, 즉 야생초들의 모습이지요.
저는 이 모습들을, 온갖 어려움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람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면서 서로 연대하고 다독이는 보통 사람들과 연결하여 직접 빚은 도자기에 표현합니다.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 생명의 순환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요.
젊은 시절에는 동학이나 민중처럼 거대한 담론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시골살이를 하고 흙과 풀을 접하면서는 생태 순환적이고 미시적인 세계에 빠져들었죠.
근본적인 마음이 변한 건 아닙니다. 전에 소나무나 강에서 민중을 보았다면
지금은 질경이나 엉겅퀴, 나비같이 주변의 일상적인 존재에서 역동성과 주체성을 지닌 보통 사람들을 떠올리니까요.
Q. 작품을 더 잘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의식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기술 문명은 근대 이후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문명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잖아요.
80, 90년대의 민중미술이 독재나 인간을 억압하고 억누르는 시대에 저항하는 미술이었다면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 또는 문제 의식인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을 다양한 도자 작품으로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죠.
그러니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제 작품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요?
Q. 고민이 있다면.
작가로서 작품 판매에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습니다.
도자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실용적이고 장식적 기능을 두루 가진 예술입니다.
생활자기를 함께 제작하면 작품제작 비용 마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작품세계가 확실히 정립되기까지는 생활자기 제작과는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기존의 도자 작품과 차별되는 저만의 고유성이 있어야 미술계에서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방식을 연마하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소화해야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꾸준히 고민하고 실험하려고 합니다.
도자기 작품 하나하나에 사라져가는 생명체를 그려놓고 이를 입체적으로 자연에 설치하는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Q. 특별히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습니까.
오래전 일이지만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됐던 ‘봉기’라는 작품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폭정에 견디다 못한 민중들이 보리밭을 가로질러 조병갑을 잡으려고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는 장면을 구상해서 그린 작품이었어요.
동학농민운동은 도자 작품의 주제로 표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예술적 성취를 높이기 위한 작가만의 방법이 있다면.
직접 일구는 밭이나 뜰에서 노동하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성찰과 묵상을 합니다.
저는 저만의 독창적 세계관, 기법, 삶과 예술의 일치를 중시합니다.
도자 제작의 숙련된 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한편 도자와 장자, 양자역학 등도 관심을 가지고
지구 위기에 대한 대안 철학에 대해서도 공부하려고 합니다.
쉽지 않지만 어떻게 하면 도자기에 회화성을 보다 완숙한 단계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다양한 설치 작업도 작품 제작에 응용해보고 싶어요.
Q. 예술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입니까.
80년대와 90년대의 민중 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우리 땅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미술사조라는 것과 불의의 시대에 저항하는 강렬한 예술가 정신 때문입니다.
21세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시대 정신은 인간과 자연의 지속 가능한 상생입니다.
이를 작품으로 어떻게 표현하는 가가 제 작품의 핵심 주제입니다.
고온의 불 속에서 살아남는 도자의 제작 방법을 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
그동안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역할들과
병행하느라 시간에 쫓기면서 했던 작품들은 볼 때마다 어딘가 부족하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무르익어 가려면 작품에 매진하는 것과 작가로서의 프로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니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열심히 작품에 매진해보려고 합니다.
* 본 사업은 완주문화재단의 '완주예술발굴 기록화' 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지역 소식지 "2024 10월 완두콩 146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