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이야기가 있는 디자인 - 일러스트작가 설레(강소연)
안녕하세요, 완주문화재단 입니다. 완주예술인 기록화 사업을 통하여 14명의 완주 예술가를 만났습니다.
오늘 소개시켜드릴 예술인은 일러스트 작가 설레(강소연)님 입니다.
Q. 작가의 어린시절
저는 거제도에서 2살 때까지 살고 경기도 산본에서 오래 살았어요. 산본은 주변의 상황이 되게 다 비슷해요. 사람들의 면면이나 사는 환경,
생활 패턴이 비슷해요. 그래서 산본 사람을 만나면 그냥 몇 단지라고 이야기 하면 대충 어디쯤 사는지 알 수 있었어요.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몇 단지에 살았는지 이야기하면 "무슨 초등학교, 중학교 나왔겠네?" 까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비슷했어요.
Q. 나의 부모님
저는 태어나서부터 아토피가 굉장히 심했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어요. 지금도 심한편이라 치료제를 맞고 있어서 아직도 마음 쓰느냐
고생을 많이 하고 계세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기준을 잘 잡아주셔서 엄마한테 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컸어요.
몸이 안 좋으니 병원을 다니는 일부터 전반적인 생활을 함께 했어요. 그러다보니 일상의 패턴이나 규칙같은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대표작>
Q. 나의 학창 시절
만화를 6학년때부터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과 정말 즐겁게 지냈어요.
고등학교때 만화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애니메이션 출품을 하려고 밤샌 적 있어요. 시나리오 짜고 그림체 정해서 그림 작업하고,
작은 캠코더를 하나 구해서 장면 찍어서 연결하고, 촬영하고 출품했어요. 결과는 떨어졌지만 그 동아리 활동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렇다 보니 미대 진학을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그 시기에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간 선배가 초청해서 회사에 다녀오고 나서
마음을 접었어요.
Q. 만화를 좋아하는데 왜 접었나요?
동아리 활동이 너무 즐거웠는데 문하생이나 애니메이션 회사는 좀 아닌것 같았어요. 당시에 2차 창작 활동으로 코믹월드와 같은
크고 작은 이벤트에서 만화에 관련된 발표나 활동 등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건 제가 의지를 가지고 하면 되니까
'가장 좋아하는 일로 내 본업을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활동하는 선배 만화가분들이 너무 많으셨거든요.
그 이후로 동호회 활동으로 1년 분기마다 친구들과 함께 만화를 그려서 을지로에 가서 인쇄하고, 동인지를 팔고, 코스프레도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지 말자는 생각으로 10년을 보냈어요.
<완주 지역 소식지 '완두콩' 연재만화 일부>
Q.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지 않기로 했는데, 마음이 바뀐 계기가 있나요?
결국 그리게 되나봐요. 동호회 활동도 한계가 있고, 완주에 온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완주에 내려오니 집값이 싸서 돈을 벌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래서 '버텨볼까?' 하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외주를 받아서 일하기 시작한 거에요.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계속 원하는 걸 그려오다가 상대가 원하는 걸 그려야 하니까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시안을 3개 보내면 제가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절대 채택되지 않더라고요.
Q. 그걸 어떻게 견뎌내셨어요?
고민이 많았죠. 여기 지인분들도 시각 활동하는 분이 많아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어떤 분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으면 안된다.',
또 어떤 분은 '디자인은 일이니까 클라이언트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저의 일이다.' 하는 분도 계셨어요.
지금은 "내 개인 만족은 개인 작업물에서 하는게 맞다." 생각해요. 어차피 외주에서는 충족이 되지 않으니까요.
Q. 완주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저는 독립이 너무 하고 싶어서 서울에서 계속 집을 알아보는 중이었어요. 한 2년동안 집을 계속 찾았는데, 집값은 너무 비싸고,
아파트에서만 자라다 보니 쉽사리 빌라로 못들어가겠는거에요. 귀농, 귀촌에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제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였고 또 제가 일하던 단체가 문을 닫았어요. 그때 친구가 완주에 아는 분이 사는데
일도 도와줄 겸 놀러 오라고 하셔서 '놀러나 갈까?' 해서 놀러 왔어요. 그때 형님 집에서 만난 분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서 내려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2년정도 일하다가 서울로 갈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10년이 흘렀네요.
Q. 완주에서의 활동은 무엇이 있나요?
완주의 축제나 행사에 참여하면서 각자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재미나게 지낸 것 같아요. 누군가는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하고 또 목공일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개성이 강한 친구들이 모여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는 일이 아주 재미 있었어요.
또 한 1년 동안 고산청년공간이었던 림보책방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소자보 디자인 작업을 주로 했는데, 제일 재미있던 건
프로그램별로 출석 도장을 만드는 거였어요. 몇 개를 모으면 연말에 선물을 주는 도장이었는데, 메인 케릭터인 토끼 인간을 제가 그렸어요.
그리고 완두콩이라는 지역 소식지에 연재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처음 2년 정도는 완주에 귀촌해 살면서 느낀 걸 주제로 잡고 했어요.
생각하지 못했는데 엉뚱하게 느껴지는 생활 모습들이요. 그 후에는 '완주에서 자리를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상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요즘엔 약간 실험하듯이 편하게 그려요.
<림보책방 디자인 '토끼인간'>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수묵화를 배우고 있어요. 표현하는 방법이 재밌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그리고 싶은 건 정해져 있으니까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고 다양한 도구도 써보는게
재미있는 단계에요. 그래서 일단 지금 공부하고 있는 새로운 도구를 열심히 잘 써보려구요.
콜라보도 해보고, 아직 나는 뭔가 많이 해보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게 계획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데 방법이 되게 다양하잖아요. 기술적으로도 늘어야 하고, 내 생각이 깊어져야 그림도 깊어지는 거니까 계속 공부 해야죠.
Q. 향후에 어떤 예술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기억되는게 좋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 만족스럽게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까 항상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겠죠.
어디가서 그림 그린다고 잘 이야기 하지 않는것 같아요. 제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순간이 자주 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