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우리 소리 널리 알림이, 경보비"
저는 소리꾼 경보비라고 합니다. 판소리를 햇수로 21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공연예술 쪽 활동도 하고 있어요. 강의로는 한국예술진흥원 지원사업 중에서 국악분야 예술강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악부분에서도 창의력체험과 교과과정이 있는데, 저는 교과과정 분야를 맡고 있어요. 학교 음악 교과서를 보면 국악도 있고, 서양음악도 있잖아요. 이 사업의 취지는 전문국악인이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접하고 좀 더 친근하게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과 후 활동, 다문화센터의 아이들, 그리고 성인들에게도 전통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연예술 쪽으로는 작년에 음반을 냈는데요. 하나는 판소리 흥부가에서 ‘밥 먹는 대목’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밥심이 국심’이라는 곡이구요. 하나는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모두 함께 잘 살아보자는 뜻을 가진 ‘함께 아리랑’의 국악가요까지 두 곡입니다. 작년 완주군에서 진행한 청년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서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창작판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공연은 크게 행사와 연주회 두 가지로 나눠서 하는데요. 연주회는 국악만 할 때도 있지만 국악뿐 아니라 서양음악과 함께 콜라보하면서 공연하기도 하고요. 행사는 각종 축제나 주최측에서 초청을 해 주셔서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아, 요즘에는 언텍트도 많이 활발해져서 유튜브로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공연활동은 개인 활동인 ‘꿈꽃’ 단체와 사사 받고 있는 선생님 단체 활동, 그리고 우리소리 ‘아세헌’이라는 팀 등을 통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래를 좋아해 목이 쉰 아이
목소리가 어렸을 때부터 허스키했어요. 요즘은 연습도 하고, 학교 수업을 나가서 아무래도 말과 노래를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평소보다 목이 더 쉰 편이에요. 아낀다고 아꼈는데 인터뷰하는 오늘도 목이 더 쉬었네요. 하지만 제가 목이 쉰 날과 안 쉰 날은 저만 알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르더라고요. (웃음)
어렸을 때 부모님이 바쁘셔서 할머니를 따라다녔는데요. 그때 할머니 따라 자주 가던 마을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도 쉰 제 목소리를 듣고 목이 쉬었으니 명창이 되겠다, 해서 그때부터 판소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시작됐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하시는 얘기를 들으면 애기 때부터 워낙 노래하는 걸 좋아했대요.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은 기본으로 웅얼웅얼하면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해요. (웃음) 정식적으로는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국악이 판소리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국악 하는 사람들이 다 목이 이렇게 쉰 줄 알았어요. 식견이 좁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그랬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까지 전문 예술고등학교가 아닌 인문계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돼서 다른 악기들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인간문화재가 꿈이었는데요. 저희 선생님이 이번에 인간문화재로 등록되셨어요. 그 밑에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카타르시스, 판소리의 매력
제가 느끼기로는 가요보다는 국악이 훨씬 더 찐하다고 해야 하나? 그 쾌감이 있어요. 제 취미가 바느질인데요, 직선 박기를 완벽하게 하면 카타르시스가 와요. 시김새라고 해서 목 기교를 내거나, 제가 원하는 음색을 내면 그때 카타르시스가 딱 오는 그 쾌감에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통통 튀는 느낌, 그리고 약간 흥분된 느낌, 텐션이 높은 느낌이 제 판소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 판소리를 듣고 관객분들 기분이 더 좋아지라고 일부러 그렇게 무대에서 하는 것도 없잖아 있죠. 그리고 좀 더 분위기를 업 시키기 위해 말을 좀 더 빨리하거나, 목소리 톤을 높게 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해요.
가장 힘들었을 때와 행복했을 때는?
가장 힘든 때는 슬럼프가 올 때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목표가 있어서 목표만 바라보고 지냈어요. 대학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했던 데다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마인드컨트롤이라는 걸 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기 주도적인 인생을 사는 프리랜서다 보니 마인드컨트롤이 진짜 중요하고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공연 관련 예술인이다 보니 전염병이나 사회적인 이슈 등으로 공연이 끊길 때, 아무도 날 찾지 않는 느낌을 느껴요. 그럴 때는 진짜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는 걸 체감해요. 그러다 보니 슬럼프가 자주 오는 것 같아요. 슬럼프가 올 때는 목표를 설정해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슬럼프는 시간이 많을 때 오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러 더 일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취미가 많은 편이에요. (웃음)
반대로 노래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노래를 통해서 아이들 가르칠 때, 무대 위에서 노래 할 때 그럴 때 가장 행복하고 뿌듯해요.
어렸을 때 가사를 무대에서 까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부터 가사 트라우마가 생겨서 대회 나갈 때 항상 가사 때문에 떨어지는 거예요. 가사만 안 틀리면 입상을 할 수 있는데. 너무 떨어서 가사를 까먹는 게 문제다 보니 그게 진짜 힘들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회가 아닌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트라우마도 많이 극복됐어요. 그래도 떨리긴 떨리죠. 긴장을 많이 해서 손끝도 차가워지고요. 하지만 무대가 끝나면 되게 뿌듯해요. 뭔가 오늘 잘 해냈다, 이런 느낌이 들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은?
아무래도 잘한 공연보다는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공연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기억이 안 남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데요.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선생님 수하들끼리 했던 적벽가 완창을 연창 식으로 불렀던 무대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다음으로 제가 한 것도 영향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연습을 많이 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많이 들거든요.
그리고 저는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목표를 정해서 하나씩 해나가는 성격인데요. 일단 올해 목표는 대학원 석사 논문이에요. 그리고 선생님이 서울에 계셔서 판소리를 배우러 매주 서울로 가서 적벽가를 배우고 있어요.
3년 전에 지금 배우고 있는 적벽가를 끝내서 완창할 생각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밀리다 보니깐 목표했던 게 느슨해지면서 잘 안잡히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게으름 피우다가 올해 적벽가를 다 배워서 내년에 적벽가 완창 발표회를 하는 걸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전통과 퓨전 중 고르자면 전통
창작판소리를 할 때, 판소리에서 영감을 얻어요. 판소리가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요. 이 속에는 백성들의 삶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들여다보면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그 속에 깊은 뜻이 있는 부분도 있죠. 이번에 앨범을 냈을 때도 흥보가 중에 ‘밥 먹는 대목’을 모티브로 창작을 했는데요. 이 대목에서도 ‘밥’이 정말 중요하다고 나오는데, 생각해 보면 한국인은 ‘밥’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더라구요. 인사할 때도 “밥 먹었니?”라고 하고, 걱정될 때도 “밥은 먹고 다니니?”라고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할 때도 “나중에 밥 한번 먹자.”라고 할 정도로 ‘밥’이 안부의 뜻으로도 사용되잖아요. 그리고 뭘 먹든 끝은 항상 밥인 것 같아요. 삼겹살 먹고 밥 볶아먹고, 떡볶이 먹고 밥 볶아 먹고, 샤브샤브 먹을 땐 죽이 빠지지 않는 등 음식의 끝은 밥인데다가 밥 종류도 정말 많아요. 나물밥, 비빔밥, 주먹밥, 잡곡밥 등등….
이 판소리 사설이 쓰일 때도, 지금도, 밥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게 맞아떨어져서 만든 게 이번 음반이에요. 이 밖에도 판소리 사설 중에 재밌는 부분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창작할 때 판소리를 참고하는 게 정말 많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전통과 퓨전 중에 고르라고 하면 전통을 고르는 사람이거든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기준이 잘 잡혀있어야 창작을 하더라도 주제가 흔들리지 않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걸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과 퓨전 속에서 위화감 들지 않는 그런 창작을 하고 싶습니다.
여자 적벽가 중에 경보비가 있었다
학교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가끔 아이들이 편지를 써주는데요. 판소리 선생님 되는 게 꿈이라고 해요. 어떻게 열심히 안 살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주변에서도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지만, 아이들이 가장 자주 힘과 응원을 주고 있어요. 그 힘과 응원을 받아 노래 잘하는사람. 판소리 잘하는 사람. 적벽가 잘하는 사람. 여자 중에 적벽가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저의 꿈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장 애정하는 판소리가 적벽가거든요. 가장 친해지고 싶은 바탕소리이기도 하고요. 적벽가는 남자 소리꾼들이 주로 하는 소리이다 보니까 여자들이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고 가장 친해지고 싶어요. (웃음) 그러기 위해서 지금 발표회 준비를 하고 있고,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 적벽가 중에 경보비가 있었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완주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완주군은 예술인들을 위해서 지원사업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 청년지원정책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지원사업들에 관심을 가진 예술인이라면 완주에서 예술인으로 살기는 참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연 등 문화 향유계층이 소외되는 부분이 있어 지금보다 더 많은 문화 활동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철휘 화가가 경보비 소리꾼에게 보내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