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농촌이 좋아 무작정 내려왔다는 도시 아가씨.
새침함 뒤에 숨은 웃음이 싱그러운, 그녀의 상큼한 웃음만큼이나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책방의 운영자.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워주고 있는 영화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꿈을 꾸어보자.
_
Q. 완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청년 기획자로 소개받았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 부탁드린다.
A :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은 고산 ‘청년공간림보책방’을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만들고 있다. 이 공간은 군에서 운영하는 청년 거점 공간이고 삼례에 플래닛완주 1호점, 여기 고산이 플래닛완주 2호점이다. 청년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너멍굴영화제’를 3회째 진행하고 있다.
Q. 완주에서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인지 궁금하다.
A : 이 공간은 작년부터 세팅을 했다. 작년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모여서 기획팀을 꾸려서 공간디자인부터 내용까지 기획을 하고 만들게 되었다. 너멍굴영화제는 2017년에 귀촌을 했는데, 먼저 내려와 귀농한 친구,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후배와 함께 친구의 땅에서 1박 2일 텐트촌 영화제를 열었다. '불편한 영화제‘라는 테마로 저희는 장소만 제공하고 완주 군민이나 일반 관람객들이 각자 텐트와 음식을 짊어지고 오셔서 너멍굴에서 독립영화를 관람하고 캠핑을 하는 축제다.
Q. 최근에 진행된 ‘너멍굴영화제’ 활동은 정말 인상 깊다. 집행위원장을 맡고 계시는데, 이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린다.
A : 직책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좀 재미있게 하려면 틀을 제대로 짜보자고 해서 각자 조직위원장,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 등 직책을 맡아서 각자 자기 할일을 제대로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집행위원장은 총괄 사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다. 첫 회에는 사실 서울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완주에 대해 잘 몰랐다. 지금은 완주에서 살고 있는 제가 완주군과 행정적인 일을 연락하고 전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완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Q. ‘너멍굴영화제’를 이곳에서 갖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주신다면?
A : 독립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지역에 독립영화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해보자, 독립영화감독들이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마침 귀농한 친구의 땅에 영화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힘을 합쳐 영화제를 만들었다. 영화를 접하지 못하는 현지인들을 위해서도 좋고 열악한 조건을 가진 젊은 청년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림보책방의 공간지기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림보책방은 어떤 곳이고,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지?
A : 림보책방은 책방지기인 통통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저는 작년부터 완주군 청년정책팀과 함께 일하면서 완주군에서 고산에 청년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통통과 같은 공간을 보게 되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서로 이야기하다 책을 매개로 한 청년거점공간을 만들자고 뜻이 모여 함께하기로 했다. 분리하자면 책방은 통통이 운영하고, 저는 청년공간의 매니저다. 그렇게 고산청년공간×림보책방이 태어났다.
Q. 완주로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고 완주에서의 첫 행보는 어떤 것이었는지?
A : 2016년에 완주로 귀농한 친구 덕분에 완주에 서너 번 놀러 왔었는데, 그때 당시 저는 취업준비생으로 서울살이가 지치고 힘들었다. 완주가 살기 좋다는 친구의 권유로 아예 눌러앉게 되었다. 2017년 3월에 처음 완주로 이사 왔고, 곧바로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에서 마을기자로 활동했다.
Q. 귀촌한 청년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실제 귀촌생활은 어떤지?
A : 처음에는 시골 마을에 연세로 집을 얻어 살면서 마당 텃밭에 소소하게 작물을 심어 가꾸기도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게으르고 관리를 잘 못해서 지금은 굳이 농사를 짓기보다는 문화적인 면에서 지역과 어울리는 것이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고 싶을 때는 가끔씩 주변 분들에게 일손을 보태거나 도와드리고 있다.
Q. 귀촌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또 다른 귀촌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준다면?
A : 지금까지는 다행히 ‘괜히 내려왔다’하는 후회는 없다.
처음에는 그냥 잠깐 살아볼까 했지만 앞으로 계속 살 것 같다. 이곳은 같이 사는 친구이자 일하는 사람의 경계가 약간 모호한 것 같은데,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상당히 촘촘하기 때문에 마을공동체생활이 조금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사생활 보호가 잘되지 않는 시골 특징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이 싫거나 불편한 분들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저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관계들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그래서 이곳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다. 보통 처음에 이주해 오시는 분에게 곧바로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추천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Q. 문화기획자 윤지은으로 활동하며 가장 대표할 만한(또는 인상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 이유는?
A : 제일 즐겁게 했던 것과 첫 번째로 했던 것이 ‘너멍굴영화제’이다.
처음에 술자리에서 재미로 나눴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주위 사람들한테 좋은 호응도 받게 되었다. 그것이 완주군, 여러 공동체들의 지원으로 이어져 예상보다 규모가 커지게 되어 ‘무엇인가 계획하고 실천하면 할 수 있구나!’하는 긍정적인 경험치가 쌓였다. 제가 원래 생각만 하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어려워하는 편인데 완주에 와서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Q. 문화기획자 윤지은으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A :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흘러흘러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데, 저와 비슷한 일을 하거나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같이해보고 싶다. 그리고 원래 완주에 살고 있는 청년들과도 자주 만나 소통하고 싶다. 비단 청년들뿐만 아니라 지역 사람들, 잘 모르는 분들과도. 그런 관계에서 어떠한 시너지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이 부분은 저희가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축제나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획비’ 명목의 비용을 책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엄연한 노동인데 기획비를 책정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루트와 지원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문화예술인들과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많아서 조금씩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해본다.
Q. 어떤 꿈을 가지고 계신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A : 이곳에 와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기도 하고.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심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는데 요즘에는 빵 굽는 일을 배우고 싶다. 옛날부터 하고자 했던 것들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