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동양의 모티브, 한국적 색채를 현대의 산물인 알루미늄, 자동차도료 등의 실험적 재료로 재해석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그의 주된 주제는 생과 사, 한국의 흥, 놀이이다. 독창적 작품세계와 열정적인 활동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2016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시회를 열고 있는 금보성 아트센터 공모전에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 1회 한국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공자의 표현인 종심(從心, 70세)의 나이에도 현재까지 문화공간 모악재에서 꾸준한 작품세계를 표현하며 그의 예술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Q. 뵙기 전 선생님의 이력을 찾아보니 회화전공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조각으로 보이는 작품도 있던데, 선생님의 활동장르는 무엇인지?
A : 흔히 농담처럼 ‘잡가’라고 말한다.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작가는 처음 떠오르는 모티브를 스케치하며 그림으로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줄지 부조처럼 입체를 주고 컬러링할지 아니면 환조처럼 만들어 공간에 세우는 것이 표현이 강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정이 된다. 작가가 굳이 장르를 구분하여 작업하지 않아도 결과로 나온 형태를 두고 평면, 입체, 반입체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료의 예를 든다면 장구춤이나 민속놀이의 표현을 현재 많이 쓰는 알루미늄은 윤기가 있어 차가워 보이는 재료로 표현이 부족하면 한지 등을 결합하기도 한다. 유화, 아크릴, 수채물감의 재료가 주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마다 다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피카소의 경우에도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았던가. 굳이 장르를 구분하는 것도 우리들의 시각인 듯하며 외국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Q. 한국적 색채와 재료로 자주 사용하시는 알루미늄이나 자동차용 도료와의 조합이 낯설게 느껴졌다. 특별한 재료들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 몇 해 전 LA에서 전시회하며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뉴욕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LA와 뉴욕은 다른 분위기를 가진 듯 했다. LA는 한인 타운이 있어서인지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조합이 느껴졌다. 나의 그림의 기본적 모티브는 동양적이며 풍물, 샤먼 등 나도 모르는 체질적인 동양적 성격이 드러나는데 알루미늄이라는 금속재료는 현대의 대표적 소산으로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성이 융화된 작업이라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은 창작성을 띄는 것이고 차별화된 혹은 사용한 적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깊이 있는 전통계승의 의미를 시대적 흐름이나 감각과 맞추어 현대화 시키는 것도 작가의 고민이라는 생각으로 고민하다 선택하게 되었다.
生·놀이 / 330x210cm / 알루미늄, 자동차도료 / 2016
生·놀이 / 180x300cm / 알루미늄, 자동차도료, 유채 / 2010
Q. 말씀하신 동양적 모티브를 현대의 상용소재중 하나인 알루미늄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미래의 후손에게 기록의 의미를 부여할만한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
A : 소망이야 있겠지만.....(웃음) 당위성을 두자면 현대적 재료를 사용하여 여러 작품에 드러난 상모돌리기의 리듬감이나 공간 확장의 모습을 선사시대 토기의 빗살무늬를 떠올리며 표현한 점이 있다. 평면회화는 벽에 붙으면 한 가지 느낌만을 줄 수 있지만 평면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고민한 것이 피카소이며 입체파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이 재료를 사용하면 평면의 한 가지 이미지만을 주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을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점을 염두하고 작업하였다.
Q. 질문 드린 재료들은 사용하기가 꽤 어렵고 노동력도 필요해 보인다. 재료를 다루시는 특별한 노하우나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있으실지?
A : 공정이 까다롭긴 하지만 오랫동안 작업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 타카 공구 사용 중 손과 같이 찍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즐기며 하니 부담되는 작업이 아니다. 즐겁게 하면 된다.
Q. 혹시 최근 새롭게 시도하셨거나, 사용을 시도하고 싶은 재료가 있으신지?
A : 재료 실험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사용했던 재료를 함축해서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Q. 선생님의 작품을 매우 한국적이다, 우리답다, 우리 것을 보여준다 라고 표현된 기사들을 보았다. 고흐나 고갱이 갖는 대표적 이미지처럼 선생님이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인지?
A :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소풍 왔다 간다고 하신 천상병 시인처럼 나는 폭넓게 ‘놀다가겠다‘라고 표현되었으면 한다. 우리의 문화를 흔히 한의 문화라고들 말하고 나 역시 그리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못지않게 흥의 정서를 가진 민족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는데 진도에서 씻김굿을 몇 차례 본 후였다. 상여 나가기 전날 흐드러지게 노는 장면을 보았는데 상여판에서 어떻게 저런 흥과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바탕은 윤회일 것이다.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으니 흔쾌히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자 라는 것처럼 보였다. 삶은 죽음까지 포함한 진지한 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 그때부터 생, 놀이라는 주제로 작업해왔다. (영어로 번역해 놓으니 의미전달이 많이 부족하다.) 내가 놀이처럼 화실에서 즐겁게 때로 우울할 땐 깨고 부수고 하는 흔적을 두고 타인들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Q. 지금까지 무수한 전시회를 하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여하신 전시회나 작품 중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전시회나 작품이 있으신지?
A : 대개 그림의 장르 혹은 주제가 십년주기로 바뀌었던 것 같다.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재료사용이나 시도가 있었고 그 작품들은 특별히 생각된다. 그런 작품은 판매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다. 혹은 난해해서 판매되지 않기도 한다.
떠다니는 섬 / 380x180cm / 알루미늄 / 2011
Q. 여러 곳에 작품을 기증하시는 모습을 뵈었는데 어렵게 작업하신 작품이니만큼 아까운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A : 나의 꿈은 화가였기 때문에 결혼 3개월 전 교사직을 내려놓았다. 교사를 계속했었다면 그림과 연결된 일은 할 수 있겠지만 작품 활동을 마음껏 해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그만둔 이후 나 뿐 아니라 가족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많다. 드물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한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지한 행운이다. 하지만 예술 활동은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공익적 즐거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을 주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Q. 정읍이 고향이시고, 전주를 기점으로 여러 지역, 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데 완주에 오랫동안 계시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A : 완주로 올 때 특별한 이유는 없었으나 82년도 땅을 구입하여 들어올 당시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다. 경제 상황에 맞추어 장소를 찾다가 모악산 자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구입할 수 있었고 모악산을 등지고 있는 이곳이 지금까지도 정말 좋다.
Q. 도립미술관 설립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긴 했으나 이전과 달라지는 모악산 주변의 변화에 혹시 안타까운 심정이 있으신지?
A :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누리던 환경이 유지되기 원하는 것은 개인적 욕심일 뿐 더불어 사는 것이고 다소 편해진 측면이 있으니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이치 아니겠나. 이전처럼 구이저수지 상류를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여러 사람이 빠르게 왕래할 수 있는 장점이 생기지 않았는가.
Q. 최근 준비하고 계시는 작품이나 전시회, 활동계획 등이 있으신지?
A : 내년에 정해진 스케줄이 있고 10월 1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중요한 전시회가 있다. 하지만 전시회나 일정을 잡아두고 작업을 하지 않는다. 작업은 일상이며 그 중 적절한 작품을 출시하는 것이지 특별한 일정에 맞추어 작업하지 않는다.
Q. 전북, 또는 완주 화단의 어른으로써 꼭 하고픈 말이 있다면?
A : 문화예술은 경제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경제 호황상태에 따라 파리에서 미국으로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옮겨진 것처럼 사람들이 먹고살기 편해지면 마지막으로 관심을 두는 것이 예술이다. 반면 경제가 안 좋으면 가장 먼저 처분되기도 하는 것이니 전북경제가 활발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본다면 전북지역의 예술인들이 정말 많이 어렵고 실질적인 도움 혹은 정책수반이 아쉬운 실정이다. 인간의 정신적 중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분야중 하나가 예술일 것인데 우선 살기 어렵다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순수미술이나 인문학 교육이 학교현장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움이 크다. 나에게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림을 그리겠느냐 물으면 화가 난다. 어차피 나는 또 그림을 그릴 것이고 어려운 시절을 겨우 빠져나와 이제야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어려움을 다시 겪으라 한다면 이것은 그저 싫고 화가 나는 것으로 표현이 다 되지 않을 정도이니 다른 예술인들의 현실적 어려움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사 온 이후 작업 공간이 넓어지기도 했고 비용 절약을 위해 흙을 소재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전과 비교하여 스케일도 커지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유화물감으로 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윤기 있는 유화물감은 내가 바라던 동양적 정서 표현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초라해 보이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고 빛은 없지만 깊이가 있는 표현이 가능한 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 중에 색감이나 다양한 표현가능성이 보이는 흙이 떠올랐고 작품의 깊이를 표현하기에 적절해 보여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접착제 등이 마땅치 않아 사용을 지속하진 못했으나 그림은 물감만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고정된 생각이 바뀌었던 경험이었다. 발상을 전환시키면 현실을 한탄하기보다 얼마든지 생각을 확장해 볼 수 있고 재미있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자동차만 만들던 사람은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는 감히 생각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를 전자기기로 생각하는 사람은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동차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엉뚱하지만 로봇청소기 위에 의자를 두어 작품을 그리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상상력은 표현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현실적인 재료부분에서도 물감이나 정해진 재료도 좋으나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엉뚱한 상상을 긍정적 이미지로 전환시켜 보는 경험들을 많이 시도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生·놀이 / 260x183cm / 흙과 먹 / 2000
추어나 푸돗던고 / 알루미늄, 한지 / 2012
추어나 푸돗던고 / 도자, 흙, 자동차도료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