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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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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병진
  • " 천년의 아름다운 전통을 보존, 전승하는 소목장 "
  • 분야
  • 시각예술
  • 세부분야
  • 공예
  • 활동지역
  • 완주군 용진
  • 연락처
  • 010-7777-9632
  • 이메일
  • byungjinso@hanmail.net
  • 주소
  •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완주로462-9
  • 기타
예술인 소개

1965년 그의 나이 15세,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소병진은 부모님의 고생을 나눠지고자 가방대신 대패를 들었다. 

8촌 형의 소개로 당시 전주 최고 가구점이던 ‘중앙가구’에서 기술을 배우던 중 선배의 눈에 들어 동양 최대 가구점이던 서울 인사동 ‘동일가구’로 기술 유학을 가게 된다. 

이때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에 전시된 고가의 ‘전주장’을 직접 보고 복원의 꿈을 키운다. 

군 제대 후 전주로 내려와 최고 소목 장인이 되겠다는 다짐 하나로 가구사업과 전주장 복원사업을 병행. 

결국 120년 만에 ‘전주장’ 복원의 업적을 이룬다. 

대한민국 명장 가구제작 1호, 국가무형문화재 제 55호 소목장, 한국 전통문화 대학교 전통문화 교육원 객원교수 등 수많은 타이틀은 나무를 닮은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_

# 소목장

 

소병진 명장이 나고 자란 고향,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은 과거 목수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1960년대 작은 면소재지에 농방이 있었고, 70년대 후반까지 소씨 가문에서만 대목, 소목을 합해 30여 명의 목수가 있었다. 

나고 자란 환경이 ‘목수의 고장’이다 보니, 집안 형편상 상급학교 진학보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목수의 길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대목장은 큰 나무를 다루며 절이나 한옥을 짓는 곧 건축 일을 하는 목수를 말한다. 

소목장은 집을 짓고 나면 그 안에 세간살이 가구나 목조 기물 등 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만든다.

소목장과 대목장 모두 똑같은 목재를 다루는 일이며, 기술도 있지만 소병진 명장은 ‘가구’가 좋아서 전문 소목장이 되었다고 한다.

 

“목재를 다루는 직업 중에 가구만 유독 ‘藝(예)’가 들어갑니다. ‘가구공예’, ‘소목공예’ 라고 부르죠. 대목이나 창호는 건축분야에서 ‘대목장’, ‘창호장’ 이렇게 부릅니다. 

바로 소목은 기술보다 예술이 가미되어야 해요. 소목공예는 매일 쓰는 물건이다 보니 미세한 실수도 바로 보입니다. 큰 대목은 작은 오차가 있어도 높이, 위에 있으니 안보이고, 흙으로 메꾸면 또 안보여요. 소목장은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미를 추구하는 것이죠. 올곧은 목재와 숨을 같이 쉬어야 하는, 그게 좋아서 소목장이 됐어요.”

 

조선시대 전주는 전주관찰사와 고급관리가 많았고, 넓은 평야를 소유한 부호와 양반이 많은 탓에 소요와 공급이 맞물려 고급 가구소비가 많았다.

덕분에 타 지역에 비해 가구 공예도 발달하게 됐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정서

 

# 전주 중앙가구 & 인사동 동일가구

 

완주 용진의 15살 소년이 ‘농방쟁이’에서 대한민국 ‘명장’, ‘무형문화재’로 발전하기까지는

소병진의 기술과 성실함을 받쳐준 돌다리와 같은 감사한 사람들이 있었다. 

 

“전주중앙가구 김석환사장이 제일 고맙죠. 내가 거기서 일을 시작하고 배웠으니까.

그리고 내 스승님인데, 고향의 30여명 목수 중에 유일한 이씨. 이해민씨 그 양반한테 일을 배웠어요. 그리고 나를 서울로 유학보낸 유춘봉씨. 그 분 덕분에 전주장도 만났죠.”

 

유춘봉씨는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목수다. 

전주중앙가구점 김석환 사장은 전주 가구 발전을 위해 유춘봉씨를 스카웃한다. 

유춘봉씨는 어린 소병진 명장을 지켜본 끝에 ‘큰 세상 나가서 큰 목수가 돼라’ 며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동일가구’에 소개를 해준다.

당시 인사동 동일가구는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종업원 500명의 일본을 능가하는 동양 최고의 가구 공장으로 ‘농방쟁이’, 목수들의 꿈인 곳이다. 

 

“동일가구는 국내반, 청와대반, 수출반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매일 공방 견학을 올만큼 대단했어요. 김동식 사장님이 ‘우리나라 최고 좋은 공방’을 만들었지.

거기 가보니 한번도 보지 못한 방식하고 보도 못한 가구가 있더라고, 동일가구에서 최고 좋은 기술을 많이 습득했지요.”

 

소병진 명장은 인사동 동일가구에서 3년을 지내면서 가구 기술자가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전주장’을 발견하게 된다. 

 

 

# 전주장 

 

전주장은 전주지역 양반들과 부호들이 선호했던 가구이다. 다른 지방의 가구보다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가구 안에 비밀 문갑이 숨겨져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또, 양반들이 집으로 목수를 불러서 방 크기나 쓰임새에 맞게 주문제작한 이유로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명장 소병진은 60년대 후반 인사동 거리에서 ‘전주장’을 처음 봤다.

 

“쉬는 날 인사동에 나갔는데 가구쟁이 눈에 가구만 보였죠. 예쁜 장이 있어서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값도 비싸고 한문으로 전주장(全州欌)이라고 쓰여 있어요. 

내가 전주 사람인데 처음 보는 농인거야. 그래서 주인에게 물어보니, 조선시대 전주에서만 생산되었던 장이라네.

내가 전주에서 왔는데...?? 전주 어디냐고 물으니.. 전주 근처 완주래요!

내가 완주 사람인데, 완주 어디요? 했더니 용진이래. 

내가 용진 사람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태어나서 처음 본 농인 거죠. 

거기서 자극을 받았어요. ‘전주장’은 우리 선조, 용진 개바우 것이다. 내가 복원해야겠다.  

그 때부터 월급 받으면 나무를 사서 시골에 쟁였죠. 나무를 20년간 말려야 하니까.” 

 

소병진 명장은 1984년부터 전주장 복원을 시작한다. 

20년간 재료 나무를 말리고, 본격적으로 1992년부터 복원에 돌입해 2007년 120년 만에 조선 한식가구 전주장(全州欌) 복원을 이뤄낸다. 

그 공으로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제 163410호)을 받았고, 지금까지 45종의 ‘전주장’을 복원했다.  

 

 

전주장과 함께

 

# 문화재 & 명장 & 장인 

 

소병진 명장은 보통 10년의 시간은 배워야 된다는 목수를 단 2년 6개월 만에 된다. 

 

“애절하니까, 간절하니까 빨리 됐죠. 돈 때문에 포온이 져서, 우리 어머니 새우젓갈 팔러 다니는 것도 아버지 고생도 그만하게 하고 싶었죠. 형편 원망할 필요 없어요. 열심히 했죠. 물론  첫 단추도 잘 끼웠죠. 시간낭비 않고 최고 좋은 공방에서 배우기 시작했으니까.”

 

환경을 탓하지 않고 긍정의 힘을 끌어내는 소병진 명장은 1965년 처음 목공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55년을 달려오면서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 

1992년 목수생활 20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 명장(名匠) 가구제작 1호 선정된다. 

그 때 소병진 명장의 나이 40세였고, 최연소명장이었다.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9호 전주장 보유자 인정 됐고, 201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55호 소목장 보유자 인정. 이 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소병진 명장은 아직 이뤄야 할 일이 남았다고 한다.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준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목수에게 연장은 소중해요. 

내가 처음 기술 배우면서 리어카에 싣고 다녔던 연장부터 천점이 넘는 공구를 간직할 박물관과

후학에게 전주장이 천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하고 싶은 기술보급, 기능전수를 위한 전수 교육관까지 완벽하게 이뤄내야죠.”

 

소병진 명장은 어릴 때부터 팽이도 예쁘게 잘 깎고, 연도 잘 만들어서 어른들에게 ‘목수해라’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목수를 해서 나는 너무너무 좋아요. 

목수일 해서 명장도 혀, 문화재도 혀, 교수도 혀, 안 해본 것이 없잖아요. 

머리와 두뇌와 팔과 다리를 같이 쓰니, 치매도 안 걸리고, 정년이 없어요. 

나는 이 일이 천직이고, 죽을 때까지 대패가 갈 때까지 할라고요.”

 

명쾌하게 박수를 치는 명장의 손은 거목을 닮아 있었다. 

 

​ 

대패를 당기는 모습

주요 활동
1964년 전통가구 소목(小木)제작 입문 – 이해민선생 사사
1978년 소병진 전주장 연구소 운영
1978년 ~ 현재 소병진 전주장 전수교육관 관장
1992년 ~ 현재 각종 방송출연 50여회, 각종 신문잡지 게재 150여회
1992년 ~ 2007년조선 한식가구 전주장(全州欌) 복원
1992년 10. 07  대한민국 명장(名匠) 가구제작 1호 선정.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제85493호)
1994년 ~ 현재 전시회 실적 : 개인전 5회, 단체전 300여회
1994년 전주시민의 장 「문화장」 수상
1998년 06. 01  문화재 수리 기능자(한식목공) 취득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문화관광부장관상」 수상
2000년 12 문화재수리 등 전공분야 사업실적
국가보물 : 부안 개암사 탱화 보관함 제작 (10m × 15m)
2000년 전주시 예술상 「미술부분」 수상
2001년 ~ 2015 우석대학교 산업디자인 학과 (가구디자인 전공) 겸임교수
2001년  대한민국 대통령표창 (제 132192호)
200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제 190호)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문화예술부문) 수상
2004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제 163410호)
2008년 ~ 2010 발명특허 (조선한식가구 목가구용 적층부재 1건)
소병진 전주장 상표등록 (25건) 
전주장 디자인등록 (6건)
2011년 ~ 현재 한국전통 문화대학교 전통문화 교육원 객원교수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9호 전주장 보유자인정
2012년 12 전공분야 연구실적 
단행본 – 공동저서(소병진,남경미) 전주장(全州欌)
2014년 09. 16  국가무형문화재제55호 소목장(小木匠)보유자인정
2015년 12 학위논문 (석사) 조선한식가구의 구조와 형태에 관한 연구 
(전주장 복원을 중심으로)
2016년 02. 24  우석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석사)
2019년         전라미술상수상
필진 정보
 대표 이미지
김경화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으로 예능 구성, 드라마 집필 및 희곡 작가로 활동 중이다.
story41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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