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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관심과 칭찬’ 으로 시작한 그림!!
화가 송지호는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중간에 끼어 자랐다.
형과 누나가 공부로 두각을 나타낼 때 화가는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그림이었던 것 같아요. 7살 쯤 종이에 끄적거린 그림을 부모님이 보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부모님의 관심이 좋아서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생 화가는 어머니가 발라 놓은 새 벽지에 사군자를 그리면서 부모님을 더욱 놀라게 한다. 이후 그렇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가장 행복하다.
어린 화가는 가정 형편상 읍내 미술 학원에 다닐 수도 없었다. 어린 송지호가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림 달력 따라 그리기였다. 집 뿐 아니라 이웃집에 걸린 그림 달력까지 보고, 똑같이 그리기가 미술 교육의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렇게 중학교 까지도 혼자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중학교 입학 후 미술 선생님 손에 이끌려 미술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상을 휩쓸게 된다. 이때 학생 송지호의 그림 재능을 알아본 미술 선생님은 송지호가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부모님을 설득한다. 중학교 미술선생님 덕분에 미술로 진로를 결정한 송지호는 전남 고흥 시골 중학교에서 광주 예술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화가가 예술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읍내 미술학원에서 딱 두 달 수채화를 배운 것이 미술과외의 전부다. 광주예고 2학년 시절 원광대학교 미술학과 주최 대회에서 수상 및 대학 4년 장학금의 부상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입학도 결정한다.
당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은 대한민국 고등학생 미술대회 중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의 큰 대회였고 (벽천)나상목, (유산)민경갑, (출이)김금출, (현림)정승섭, (벽강)류창희, (일석)서일석 교수님등 동양화에 인지도 높은 분들이 포진해 있었다.
무엇보다 동생 두 명도 가르쳐야 했던 부모님께 학비걱정을 덜어 드리는 건 효도였다.
“저는 은사님 덕, 수상 복, 기회의 운이 좋은 사람 같아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두 번의 입상 등 스스로도 상복이 많았다는 화가는 꼭 받고 싶은 상이 있었다.
바로, 우진문화재단에서 한 해 전라북도 출신 작가 3,4명에게 주는 ‘청년작가’ 상.
하지만 무려 5번의 고배를 마시면서 화풍을 바꿔야겠다는 고민과 과도기가 함께 온다.
마지막으로 안 되면 그림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화가로서 끝까지 생각했던 6번째 도전에서 화가는 <우진 청년작가>를 수상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난 유난히도 나무나 꽃을 좋아했다. 앞마당에는 내 어린 눈으로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나무가 있었고, 그 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친구였으며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이었다.’
화가의 작업노트에 적힌 글처럼 2012년 청년작가가 된 화가의 모든 그림은 나무와 작은 꽃이 어우러진 정원에 꼭, 빈 벤치가 있다. 누구나 쉴 수 있는 휴(休)를 품은 그림이다.
5전6기의 도전을 겪으면서 화가는 대학에서 배워 익숙한 화풍과 점묘와 선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대사관과 강남 세브란스 병원 등에 걸리지만 화가 스스로 만족이 되지 않는다.
“원대 스타일, 스승님 스타일이 아닌, 저만의 기법이나 스타일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바꿔 보자는 고민이 생겨났죠. 아내가 임신도 하고... 여러 가지로 가장 복잡한 시기였죠.”
자신만의 기법과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화가는 토끼띠인 자신과 같은 띠로 태어날 딸의 출산을 계기로 과거 동양화와 다른 화풍, 기법, 소재에서 터닝 포인트를 마련한다.
화가가 좋아하던 ‘나무’ 대신 ‘토끼’로 그림 소재가 바뀐 것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였다.
또 기존 그림의 ‘빈 벤치’ 대신 말, 고래, 풍선, 둥근 자동차를 토끼와 함께 배치해 마치 그림 안에 재잘거림과 소곤거리는 이야기가 담긴 듯 경쾌함이 그림에서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편한 그림이 좋아요. 어른과 아이와 소통하고, 같이 교감을 나누면서 작품을 감상하기가 그 전 그려오던 동양화 작품보다 토끼 이미지가 훨씬 제 그림을 감상하는 분들과 소통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햇살 좋은날-행복 / 60.6×60.6㎝ / acrylic on canvas / 2016
넘치는 사랑 / 60.6×60.6㎝ / acrylic on canvas / 2017
햇살좋은날 / 244.2×244.2㎝ / acrylic on canvas / 2018
화가의 말처럼 기회의 운이 많았던 것일까?
화가는 MBC 드라마 <이산>에서 도화서 화공의 손 대역으로 참여 한 인연으로,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그림 협찬을 하게 된다.
이때 드라마에 협찬한 그림은 소재와 화풍을 바꾼 그림이었다. 장보리 라는 어린 소녀 주인공과 닮은 환하게 웃는 토끼 그림은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때부터 송지호 화가는 ‘토끼 화가’로 불리게 된다.
화가의 ‘토끼’는 유명해져 그림 뿐 아니라 마우스 패드, 프린트 액자, 압축아크릴 액자, 연필꽂이 등의 캐릭터 상품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또 전주 대자인 병원 앞 버스 정류장에는 화가의 그림 속 토끼가 조형물로 설치되어 있다.
벌써 화가의 토끼띠 딸은 9살이 되었다. 화가는 9년 째 토끼를 그리면서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는 나이프를 이용한 꼼꼼함과 터프함이 같이 믹스된 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기법에 섞어보려고 해요. 먹의 점묘와 선묘에 서양화에서 찾는 면적인 느낌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조형을 하고 싶어서 비구상과 구상의 경계인 반구상을 고민하고 있어요.”
화가는 원광대 미대에 복학해서 만난 같은 과 후배 아내와 8년 연애를 했다.
대학원을 다니며 미술과 조교를 마치고, 작가 생활로 가야 했지만 그럼 결혼을 하지 못 할 것 같아서 아내와 학원 운영의 길을 선택했다.
원광대학교가 있는 익산을 떠나 전주로 가려던 부부는 우연히 공단 지역인 봉동을 알게 되어 정착하게 되는데, 이 결정 또한 행운이었다고 한다. 이미 도시는 아이들이 없어 학원 원생 이 줄고 있다. 미술 전공 학생이 줄면서 전국의 미술과도 없어지는 분위기지만 일거리가 있는 공단지역 봉동은 올 해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교실 증축을 할 만큼 아이들이 많다.
송지호 화가는 올해부터 봉동에서 운영하던 ‘나무미술학원’ 원장 자리를 아내에게 내어놓았다. 화가의 최고 지지자 겸 지원자가 된 아내 덕분에 화가는 45살이 된 올해 처음 개인 작업실을 가지고 오롯이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저에게 화가로서 만족은 삶에 부대끼지 않고 작업만 할 수 있는 것. 이 정도면 되지 않겠냐 싶어요.”
작업실을 손수 만들고 싶은 꿈에서 시작한 건축공부가 조형물 제작의 재료로 연계되는 것을 설명하던 화가는... 다음 개인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형물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밝히며 수줍은 토끼처럼 설레어 한다.
작업실 벽에 걸린 그림 속 토끼들이 곧 튀어 나와... 온갖 포즈로 전시되는 상상은 자연스럽게 9살 토끼띠 딸의 귀여움을 닮아 있겠다는 짐작은 딸을 보는 송지호 화가의 행복한 눈빛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