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안녕하세요. 완주문화재단입니다.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운영한 2025 장애예술교육지원사업 <사이:예술학교>에 대해 지역 예술가로 참여하신 이현아님의 글을 통해 돌이켜보고자 합니다.
2025 장애예술교육지원사업 <사이:예술학교> , 함께 만들어간 예술의 시간
#1. <사이:예술학교>를 지원하며
저는 평소 정신 장애를 가진 분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30대에 조울증으로 급성 입원한 뒤 스스로 병을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정신 장애를 ‘의지 부족’이 아닌 타고난 섬세함과 환경적 스트레스가 만든 뇌의 상처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3년차 음악치료사이자 최근 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한 저는, 이번 사이예술학교를 통해 정신과 낮병원 이용자분들을 처음 정식으로 만난다는 점에 설렘을 느꼈습니다. 예술의 치료적 힘을 정서·신경·관계의 측면에서 나누고 싶었습니다. 또한 아로마테라피스트 선생님과 팀으로 참여하면서, 향기와 음악을 잇는 새로운 통합 예술 활동을 실험해 보고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2. 프로그램 운영 과정과 느낀 점
초기에는 참여자들의 반응이 느리고 표정도 제한적이어서 감정 둔마가 분명했습니다. 첫 회기 후에는 준비한 활동이 다소 어려울 수 있겠다 판단해, 속도와 난이도를 낮추고 ‘안전하게 정서를 깨우는 것’에 초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프로그램 전체는 ‘감각적 안정–정서 활성–표현과 소통’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구조로 설계되어, 참여자가 무리 없이 한 걸음씩 내면과 관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1–2회기 노래 감상(비밀의 화원, 한숨)에서는 참여자들이 와닿는 가사를 스스로 밑줄치고 해석하며 희망·위로·중요한 대상 등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대”라는 단어에서 가족을 떠올리거나, 부모님의 한숨이 너무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눈물을 닦는 한 참여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구절에 공통적으로 밑줄을 긋는 모습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었습니다.

3회기에서는 더욱 에너지를 올리기 위해 책상을 치우고 동그랗게 서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정서 표현과 상호작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야외에서 스카프를 휘날리고 북을 주고받으며 전신을 움직이는 활동 속에서 참여자들의 에너지가 살아났습니다. 뒤이어 명상 사운드와 향기를 활용한 이완 시간에는 오롯이 나의 신체 감각에 집중하며 편안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4–5회기에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가사 없는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장면을 이야기하는 등 정체성과 기억을 다시 묶어내는 과정이 뚜렷했습니다. 사실 ‘음악과 심상’ 활동(music and imagery)을 시도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자극이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섬세한 선곡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선 4주간 지켜본 참여자분들은 현실 검증력과 정서 표현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작업을 결심했습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3곡의 기악곡을 들으며 잊고 있던 추억, 대상, 자연 경관 등의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고 저와 그 경험을 말로 나누었습니다. 하이라이트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6회기 작은 연주회에서는 서로의 장점을 악기 역할에 반영해 협주하였고, 수동성이 능동성으로, 부끄러움이 성취감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습 시간이 짧아 걱정이 있었지만, 참여자들은 2인 1조로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며 큰 열정을 보였습니다.
프로그램을 함께 지켜본 병원 관계자 분들은 “음악이 이렇게 평소 수동적인 회원님들을 움직이게 만들 줄 몰랐다. 감정 표현도 하게 만들었고, 성취감을 준다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또 “다음에 한다면 1:1 표현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나면 좋겠다”, “병원 내에 음악 기반 활동이 적어 더욱 의미 있었다”는 의견도 전달해 주셨습니다. 참여자 설문에서도 대부분이 “다음에도 참여하고 싶다”, “더 길게 했으면 좋겠다”, “감정을 조율하는 법을 배웠다”고 답했습니다. 저 역시 다음에는 송 라이팅(song writing)등 개별적 표현을 좀 더 섬세하게 담아낼 방법을 고민하고 싶고, 더 나아가 활동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자가 원하는 변화나 경험이 무엇인지 더 청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3. 예술 교육가로서 성장한 점
이번 프로그램은 저에게 단순히 치료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현장에 맞추어 감각–공간–재료를 통합해 ‘사이(relationship)’를 설계하는 예술교육 매개자로 성장한 경험이었습니다. 정신 장애 진단은 출발점일 뿐, 예술은 그 사람의 개성과 내적 자원을 다시 만나게 하는 과정임을 이번 사업을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 감각과 공간 구성으로 ‘관계의 장(場)’을 여는 법을 배우다
책상을 치우고 원형으로 서는 단순한 공간 변화가 참여자의 몸·시선·반응을 즉각적으로 열어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사용된 몇 가지 향은 프로그램의 ‘리추얼’이 되어 예측가능성과 각성을 제공했습니다. 야외로 나가거나 매트를 깔고 눕고, 북 하나와 즉흥적인 간단한 노래로 서로가 연결되고, 따라하거나 주고 받는 행동을 유도하는 설계는 새로 참여한 사람도 금세 하나로 어우러지게 했습니다.
2) 음악과 심상이 열어준 깊은 내면의 만남
음악은 참여자들의 감정과 기억을 여는 가장 직접적 통로였습니다. 가사 감상에서는 잊고 있던 장면과 오래된 감정이 떠올랐고, 음악치료 기법인 음악과 심상(music & imagery) 활동은 참여자들이 자기 정체성, 관계, 과거의 기억과 다시 만나도록 했습니다.
“보물을 되찾은 느낌이다”,
“잊고 있었는데, 꿀벌에 물려 부은 다리를 치료해준 할머니의 손길이 떠올랐다”
이러한 표현들은 예술이 마음 깊은 곳까지 만지고 복원시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3) 단순하지만 다양한 재료· 반복되는 구조가 공동체성을 만든다
쉽고 반복적인 리듬, 손 맛이 있는 다양한 음색의 타악기, 예측 가능한 노래 구조는 참여자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반응하고, 연결되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단순한 타악기 구성은 참여자들이 부담 없이 즉각적으로 관계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 교육적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또한 그룹원들의 강점을 서로 말해주며 그에 어울리는 악기를 추천해주는 과정과, 그 악기를 가지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병원 식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작은 연주회에서는 음악적 완성도가 아닌 “해냈다는 경험”자체가 성취감과 결속력을 높여준 핵심이었습니다.
장애인분들이 예술의 본질을 경험하고, 자신의 내적인 힘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이:예술학교는 그 공백을 메우는 소중한 기반이 되어, 예술이 삶의 회복력과 소통 능력을 확장시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안에서 이러한 통합 예술교육이 지속되고 확장될 때, 더 많은 분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고 타인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글 2025 장애예술교육지원사업 <사이:예술학교> 참여 예술가 '이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