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닫기

로고

닫기

로고


문화로 하나 된 세상. 예술로 꽃 피는 완주.

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재단 NOW

제목

[완주무장애예술축제] ‘서로’ 초보 접근성 매니저의 분투기 2부
  • 2025-01-16 11:45
  • 조회 467

본문 내용

2024 완주무장애예술축제 '서로' 초보 접근성 매니저의 분투기 2부

글/ 경희령(2024 완주무장애예술축제 ‘서로’ 접근성 매니저)

 

광활한 자료와 촉박한 시간의 함정

그렇게 수요조사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축제에 대한 본격적인 준비가 들어간 것은 10월이 되어서였다. 홍보물과 축제 포스터와 리플렛, 전시 프로그램 북, 전시 음성해설 QR, 수어통역 영상, 전시장 접근성 테이블, 터치 투어, 안전 매뉴얼, 편의시설 안내, 물리적 접근성을 위한 경사로 설치, 안정을 위한 휴게 공간 확보 등 접근성 서비스 목록만 A4용지로 두 바닥이 나왔다. 이쯤 되니 속마음이 염불처럼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말도 안 되는 축제의 접근성 매니저를 하겠다고 했을까? 내가 무슨 복을 받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기에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접근성 서비스 운영 계획의 내용이 담긴 회의록을 다시 꺼내어 보니,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이었다.

그때만 해도 전시 작품의 규모가 잘 가늠이 되지 않아서 이 정도로 힘들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10월 중순쯤 축제를 코앞에 두고서야 이 모든 일의 양이 몇 명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대했다는 것을 하나씩 마감을 치면서 깨닫게 되었다. 수요조사 보고서를 쓸 때 이미 올 해 에너지의 절반을 소진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접근성 서비스에 비하면 그것은 미미한 어려움에 불과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일도, 정성을 쏟고 마음을 다했던 일도 일정 수준의 임계점을 넘으면 독이 되는 법이다. 나에게 접근성 서비스를 준비하는 과정은 그 임계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일의 양도, 일의 난이도도, 축제가 진행되는 날짜에 모든 것을 맞추어 일의 속도를 내는 것도 정말 모두 힘들었다는 뜻이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 중에서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생각했건만, 딱 하나 경험이 없었던 축제 업무가 이렇게 촌각을 다투는 함정이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축제에는 워낙 전시 작품 수가 많아서 전시 프로그램 북에 넣어야 하는 원고의 분량도 많았는데, 휴일을 반납한 채 이틀을 꼬박 쉬운 말로 문장을 바꿔쓰는 데 사용했다. 서로 결이 다른 문장을 비슷한 톤으로 맞추고, 쉬운 말로 바꿔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예상컨대 우리를 제외하고 유사한 접근성 사업을 수행하는 다른 기관들은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으로 맡겨야 했을 분량이다.

 

여기에 더해 AI로 작업하려고 했던 음성 안내와 음성해설, 영상 내레이션 작업을 모두 접근성 매니저인 나의 목소리로 채웠다. AI 음성은 사람 음성의 뉘앙스나 문장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고,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발음이 부정확했다. 고퀄리티의 사운드를 위해서는 성우를 섭외했어야 하는데, 이미 축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의뢰를 맡기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수정한 모든 원고를 녹음하고 편집기로 음성을 다듬고, 이것을 다시 온라인에 업로드하여 QR로 작업하는 데 며칠 잠을 반납했는데도 꼬박 4~5일이 소요되었다. 문제는 이것을 전시장에 붙이는 일이었다. 전시 개막 바로 전날 작품이 세팅되었기 때문에 투명 라벨지에 QR을 적정 크기로 인쇄해서 붙이는 것 또한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다. 아래 사진은 그러한 분투의 결과물이다.

 


이쯤 되면 이것이 하소연인지 접근성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것인지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헷갈릴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무리하면서 욕심을 냈던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이번 무장애예술축제에 제공된 접근성 서비스는 그동안 완주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첫 번째 경험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완주에서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완주문화재단이, 올 해 진행되는 무장애예술축제가 처음이니까 기회가 있을 때 계획한 것을 다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 책임감을 가지고 잘 해내고 싶었다. 결국 나를 포함 서울로 함께 답사를 갔던 멤버 셋을 몽땅 갈아 넣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이 또한 축제와 함께 지나가리라!

 

드디어 축제, 현장에서 제공된 접근성 서비스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큰 목표는 연령대, 문해력의 정도, 장애 유형 등의 개인적 특성과 상관 없이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접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번 축제는 야외무대 공연 위주의 문화제와 실내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로 나누어졌다. 작년에 있었던 장애인문화예술축제와 비교했을 때 형식상 큰 차이는 없었지만, 올해에는 전문예술인 세 분도 함께 전시에 참여하였고, 전시 작품을 중심으로 접근성 서비스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접근성 서비스는 크게 영상, 음성과 같이 사전 제작된 접근성 콘텐츠를 통해 스스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돕기 위한 서비스와 시간대별로 상주 인원이 프로그램 형식으로 진행하는 상설 체험 서비스로 구분된다.

 


 

이번 축제에서 제공된 접근성 서비스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장애 유형별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맞추어 필요한 방식으로 프로그램 안내받을 수 있는 접근성 테이블을 전시 기간 내내 운영하면서,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전시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태블릿PC를 대여하였다. 이 태블릿에는 작품별 음성 안내 및 해설이 담겨 있어 휴대폰이 없거나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조건의 사람들에게 QR로 촬영하는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전시 관람 순서대로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향유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전시 작품별로 어린이와 발달장애인을 위해 전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쉬운 언어로 바꾸어 음성으로 제공하는 음성 안내 QR’,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사전 제작한 전시 안내 수어 영상을 제공하였다. 문화제 현장에서는 무대 공연의 관람을 돕기 위한 실시간 수어 통역이 제공되기도 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리플렛과 프로그램북을 전시장 곳곳에 비치하였고, 초청작가의 작품들은 전시 작품을 그리듯이 자세하게 음성으로 묘사한 음성 해설 QR’을 제공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전시를 다르게 감각해 볼 수 있도록 가이드의 안내를 통해 참여하는 촉각 투어 프로그램인 손으로 만지는 전시를 상시 운영하였다.

많은 분들에게 접근성 서비스라는 단어나 접근성 테이블’, ‘음성안내’, ‘음성해설’, ‘터치투어와 같은 말들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몇몇 분야에서 배리어프리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공공영역에서 문화예술뿐 아니라 포괄적인 범주에서 무장애 서비스라는 말과 병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접근성 서비스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접근성에 대한 고민들이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전라북도 내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접근성 서비스를 직접 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촉감을 통해 전시를 감각하는 손으로 만지는 전시

이번 축제의 전시는 개막일 다음 날부터 2주간 누에 아트홀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손으로 만지는 전시인 촉각 투어는 매일 시간대별로 정시에 정기적으로 운영하도록 기획했다. ‘촉각 투어는 보통은 하나의 공연 작품을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올리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눈으로 감각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사전 예약 방식으로 무대를 체험하고, 소품을 만져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럽의 공연장에서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접근성 콘텐츠 중 중요한 한 가지로 자리잡았다. 물론 공연예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예로 고궁의 모습을 똑같이 3D 모형으로 재현하여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했던 사례도 있다.

우리가 기획한 손으로 만지는 전시는 이번 축제의 전시 카테고리별로 다채롭게 준비했다. 먼저 초청 작가로 참여한 임경문 작가님의 도움으로 도자기를 빚는 과정마다 습작을 받을 수 있었고, 굽기 전의 도자기와 초벌한 도자기, 그리고 유약을 발라 재벌한 도자기를 손으로 만져 감각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전시된 도자기 작품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로 재현한 2D 모형을 제작하여 실제로는 만져볼 수 없는 작품의 크기와 모양을 손으로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그 외 홍성미 작가님의 설치 작품에 사용된 재료인 마스크와 최춘기 작가님이 작품에 사용한 두꺼운 한지인 장지를 화선지와 비교해서 만져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여기에 더해 장애문화예술인들의 작품 중 유화의 질감을 촉각 할 수 있도록 유화가 그려진 캔버스를 만져보거나 가죽공예에 사용되는 재료(가죽 원단, 바늘, )를 감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시각 정보를 통해 전시를 감각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새로운 방식의 전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지만, 실제 전시 과정에서는 유아와 어린이, 어르신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전시 체험 프로그램의 원래 취지는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위한 것이지만, 접근성 서비스가 제공되는 현장에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이로 인해 비장애인이나 다른 유형의 장애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없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으로 문화예술을 경험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자체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축제를 마치며

축제가 끝난 뒤, 처음으로 접근성 서비스를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찾아갔던 국립한글박물관과 모두예술극장을 다시 떠올려 본다. 새삼 접근성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 모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특히 특정 공간에 상주하는 접근성 매니저의 경우, 하나부터 열까지 과정 중 무엇하나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는 그 책임감과 사명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애인의 이동 접근성, 공공시설에 대한 이용 편의성이 낮은 지역에서 무장애의 타이틀을 달고, 그것도 단일한 전시나 소규모 공연이 아니라 장애문화예술인들의 화합과 발산의 장인 축제를 해낸 우리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무장애 축제의 접근성 매니저 경험은 도전이자 배움이었고, 전혀 모르던 분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활동이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강의를 통해 공연 분야의 선배 매니저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축제에서 접근성 매니저의 역할이 도대체 무어냐?’는 나의 질문에, ‘접근성과 관련한 모든 것이다. 그런데 현장은 다양하고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라는 모호한 답이 돌아왔다. 당시엔 그 답이 나에게 필요한 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보면 그 이상 좋은 답이 없다. 올해 무장애 축제의 접근성 매니저로 일하는 내내 항상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고민해야 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 답변의 진짜 의미를 이제는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예술현장에서 접근성 매니저의 역할은 각 현장의 조건에 맞게 할 수 있는 접근성 서비스를 최선을 다해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축제에서도 모든 종류의 접근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여력이 있었더라면 각지에서 축제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 영상도 제작하고, 문화제 야외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마다 실시간 음성해설을 제공하는 것도 시도해 보았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도 예산이나 운용 인력에 한계가 있었고, 접근성 서비스의 초점을 전시에 맞추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럼 접근성 서비스에 결국 빈 구멍이 생기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축제 현장에 온 누군가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덜 불편하게, 조금 더 재미를 찾아가게 만들 수는 있다.

완주에 처음 각인된 접근성 서비스에 대한 이번 축제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접근성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쉽진 않지만 그 노고로 인해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향유 할 기회를 새롭게 얻는 사람들이 있다면 시도해 볼만 한 의미가 충분히 있다. 그동안 저마다 다른 조건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장애인 전용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화 향유의 기회를 비장애 성인에게만 제공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일상 속에서 문화를 경험하고 누리는 것을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그 권리를 다 함께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비단 장애인문화예술축제만이 아니라 완주에 살고 있는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화예술을 감각 할 수 있는 열린 문화예술 현장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이제 여러분의 자리에서, 각자의 조건으로 그 가능성을 만들어 가기 위한 질문을 함께 시작해 보기를 바란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첨부파일

(우)55352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읍 완주로 462-9 완주문화재단

TEL : 063-262-3955FAX : 063-262-3956 mail@wfac.or.kr

페이지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