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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JU FOUNDATION FOR ARTS & CULTURE
2024 완주무장애예술축제 '서로' 초보 접근성 매니저의 분투기 1부
올해 5월, 나는 완주문화재단에서 무장애예술축제 접근성 매니저 일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작년에 처음 개최된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본 것은 아니어서 영상도 찾아보고 자료를 뒤적여 보았지만 쉽게 일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나에게 요구하는 업무가 ‘접근성 매니저’ 역할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마 ‘접근성 서비스’나 ‘접근성 콘텐츠 제작’은 우리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기간 프리랜서로 활동해 온 나는 일의 종류와 양이 가늠되지 않는 프로젝트에는 잘 덤벼들지 않는 편이다. 어느 순간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고, 시간제로 노동하고 대가를 받는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그 경계가 무너지면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받기도 하고, 시간이 확보되면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였을까? 이런저런 조건들과 일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덤벼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작년에 문화다양성 사업을 재단과 함께했던 경험에 대한 믿음도 한몫했던 것 같다. ‘접근성 매니저가 도대체 뭐야?’ 하는 궁금증과 ‘무장애 축제가 완주에서 가능하다고?’하는 의문이 뒤섞인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 그 전에 ‘무장애’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두가 장애를 느끼지 않고 즐기는 축제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궁금했다.
‘무장애’ 예술축제 그게 뭐죠?
‘무장애’라는 단어는 ‘장애’라는 말에서부터 출발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장애를 개인이 가진 신체․언어․인지․정신 장애로만 좁게 해석하지 않고 언어와 정보, 이동 가능성, 문화에 대한 향유와 표현 등으로 넓게 해석해야 ‘무장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장애를 ‘누구나 어디서든 경험 가능한 상황’으로 넓게 해석할 때, 장애는 상대적이고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차원의 것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저 멀리 프랑스에 가서 언어장벽에 가로막혀 의사소통의 장애를 겪는 상황이나,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심하게 접질린 날 마주하는 모든 계단들을 오르는 것이 버거워질 때, 나이가 들고 신체기능이 퇴화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지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겪는 ‘장애’는 생각보다 폭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장애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장애’란 말은 누구나 언어와 정보, 이동 가능성, 문화에 대한 향유와 표현을 할 때 장애를 느끼지 않는 조건을 뜻한다. 그러니까 ‘무장애’ 예술축제란, 개인의 특성(연령, 성별, 장애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하는 데 장애를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예술축제라는 뜻이다. 정확히는 예술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무장애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장애 환경을 지향하여 축제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무장애’를 위한 접근성 서비스의 밑그림 그리기
이렇게 긴긴 설명이 필요한 ‘무장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하기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환경’이라 보아도 좋다. 그래서 요즘은 ‘무장애’라는 상태 중심의 단어 대신 ‘접근성’이라는 행위 중심의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지난 6월, 접근성 매니저 업무를 시작하면서 축제의 접근성 서비스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너무 막연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찾아보고 공부하기였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접근성 서비스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접근성 매니저인 나와 문화재단 정책기획팀 담당자, 그리고 무장애 축제 기록자까지 이렇게 셋이 모여 가장 처음 한 것은 접근성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문화재단 담당자가 먼저 공부한 자료를 공유해 주거나 경험한 것을 안내해 주었고, 우리 모두 일단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큰 갈등 없이 우리는 다 함께 서울로 향했다
우리 축제는 크게 전시와 공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두 가지에 대한 접근성 서비스의 사례들이 필요했다. 한글 박물관 상설 전시장에서는 전시 접근성 서비스를, 모두예술극장에서는 공연 접근성을 위한 서비스를 살펴보고 유경험자들의 이야기도 인터뷰를 통해 들어볼 수 있었다.
한글박물관에서 함께 관람한 전시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계획>로 박물관 측에서 개관 8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상설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키가 작은 아이들이나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한 낮은 게시대와 전시와 조화를 이루는 영상전시물 등이 인상적이었으며, 전시장 입구에 전시 전체에 대한 설명이 담긴 수어 통역 영상을 제공하고 있었다. 주요 작품에 QR코드를 활용하여 음성해설이 제공되었으며, 모든 전시물의 설명은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었다.
모두예술극장은 국내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건물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극장의 위치를 정하고, 내부 공간 또한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설로 구축되었다. 문턱 없는 연습실과 장애인용으로 구축된 넓은 화장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위한 심리안정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객석 등 장애유무와 관계 없이 문화예술 활동을 수행하고 향유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였다. 공간에 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한 큰 글씨, 고대비 리플렛 디자인이나 장애 유형별로 필요한 정보, 자료 등을 맞춤형으로 갖추어 놓은 접근성 테이블 등은 다른 문화예술 공간에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 두 공간에서의 경험은 접근성 서비스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밑그림이 되었다.
완주형 접근성 서비스를 위한 사전 설계
한글박물관과 모두예술극장의 사례는 너무 훌륭했지만, 인력과 예산이 많이 투여된 결과물이었기에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행사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건물이나 공간 구조 등과 관련한 하드웨어 부분의 접근성은 당장은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아직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축제를 진행할지 안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특히 2024년에는 장애문화예술인 당사자들이 축제 기획단을 꾸려 축제에 대한 다양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행사의 규모나 내용, 장소를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2023년 축제에 예술가 또는 참여자로 활동한 장애인그룹을 우선 선정하여 수요조사를 해보기로 하였다. 실제로 축제에 어떤 분들이 참여하고, 누가 어떤 불편함을 느끼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 관련 단체 실무자, 통역사, 가족, 활동지원사 등 총 50명을 대상으로 6회의 장애 유형별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 질문지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발행한 <문화시설별 접근성 가이드_총론>(2024)에서 제시한 접근성 유형을 참고하여 공통 문항과 장애 유형별 선택 문항을 구분하여 구성하였다.
수요조사 인터뷰를 진행하는 데에 꼬박 한 달 반이 걸렸고, 생각보다 방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단순히 시간만 오래 걸린 것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취를 풀어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각각의 과정마다 너무 고되어서 접근성 매니저를 하겠다고 쉽게 승낙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아직 축제는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축제 홍보물 등과 관련하여 장애인 당사자분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도 보고서가 나오고 내용을 검토하다 보니 확실히 축제 접근성 서비스를 기획하는 데 의미 있는 내용들이 확인되었다.
예를 들면 물리적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장애인 대부분이 보호자와 이동하거나 시설에서 단체로 함께 이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보 접근성 부분에서는 휴대폰 이용이나 정보 검색 등과 관련하여 장애유형별 차이보다는 세대별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제공하는 수어 영상의 크기나 위치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었으며, 시각장애인 중 점자로 정보를 제공받는 것보다 음성 정보, 또는 주변 사람들이 읽어줄 수 있도록 텍스트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경우 글자보다 그림이 많은 직관적인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과 쉬운 언어 사용이 필요하다는 것, 정신장애인의 경우 휴게실 위치가 포함된 행사장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도 중요하게 확인된 내용이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